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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Sep 07. 2021

<그린 나이트>(데이빗 로워리, 2021) 두 번째 썰

그저 보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린 나이트>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렸더니 지인들이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달란다. '딱히 할 말이 없는데...'라고 했더니 뭐라도 쫌,이래서 몇 자 적는다. 오랜만에 막 수다 떨고 싶은 영화가 나오긴 했다. 


* 이 글에는 <그린 나이트> 줄거리나 스포일러 따위가 1도 없습니다.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오랫만에 영화다운 영화가 나왔다. <그린 나이트>는 영화를 이끄는 핵심적인 동인(動因)이 '이야기(서사)'가 아니라 '이미지'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간단한 이야기보다 더 많은 울림과 행간을 채우는 것은 씬과 씬의 이음매, '이미지의 진행'이다. 원작이 있으니 원작을 비튼 <그린 나이트>의 서사를 요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화(감독)가 얘기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유머는 장면 전환과 거기 가득한 이미지에 있다.


영화는 고풍스런 동화책처럼 타이포로 쓴 챕터로 나눠져 있다. 각 이야기는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그 한편 한편이 완결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림 동화는 그림 동화처럼 읽지 말고 봐야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고민하지 말고 화면을 그저 뚫어지게 보라. 장면 장면의 연쇄가 중요하다. 이어지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이미지가 말하고 있다.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이미지에 '눈' 기울이고 음악에 귀 기울이라.



사람들이 솔깃해하는 영웅 서사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 데이빗 로워리는 <그린 나이트>를 통해 '영화적'이라는 쾌감이 거기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빛과 소리로 그리는 그림(활동 사진)이다. '이미지가 말하게 하라', 데이빗 로워리는 <그린 나이트>를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린 나이트>의 낯설음에서 신박한 해석과 교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심해 끌어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감독은 관객과 우아하게 장난치고 싶다. 


일단 영화를 즐겨야 한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데이빗 로워리는 <그린 나이트>를 통해 언젠가 하고 싶었던 시시컬렁한 농담을 던진다. '영웅이 필요해?, 전설이 필요해?'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중세를 지배하고 서구를 지배했던 영웅서사(기사도)의 한 단면을 통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 서사, 예수 서사의 전복, 예수를 영웅 삼고 그리면서(욕망하면서) 유럽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어떤 역사가 이미 성찰했던 작업을 '영화적'으로 우회한다. 



<그린 나이트> 감상법은 일단 낯설음을 즐기고 유머를 즐기고 보이는 대로, 어색한 대로 즐기는 거다. 여유가 된다면 두 어번 다시 보자. 스스로를 믿어라. 정답, 해답 그 딴 것은 없다. 이 영화가 전복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피식 웃든 껄껄 웃든 웃기는 데서 마음껏 웃어라. 데이빗 로워리의 <그린 나이트>를 보면서 당신이 느끼는 당혹감의 이유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것은 좋은 감상법이다. '띵'하고 울리는 소리를 꼭 들으라!


특히 이미지의 전환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에 빠져라. 카메라의 시선을 졸졸 따르고 소리가 주는 쾌감을 즐겨라. 빛과 소리로 그리고 있는 장면 장면을 그저 감탄하며 보면 된다. 이야기는 잊어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버려라. 특히 인과론적인 생각 습관, 목적론적인 사고 방식을 내려 놓아라.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하게(선형적으로) 흘러가던가? 영웅 서사는 인민을 후리고 동원했던 국가(주의)가 자주 써 먹는 거대 서사였을 뿐이다. 



평민이나 인민에게 국가나 민족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애초에 영웅도 없(었)다. 대부분 날조(라고 보면) 된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존재했던 영웅 이야기의 이면은 언제나 어둡고 음습하다. 때로는 농담처럼 웃긴 선택과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이다. 역사는 그런 승자의 입맛에 따른 기록, 그 기록에 평민이나 인민은 없다. 인민의 피로 쓰인 서사시가 영웅 서사다. <그린 나이트>는 그런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감독은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서사적 단정을 거부하고 있다.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다층적인 해석이라는 말은 각자 해석하고 싶은데로 해석하면 된다는 말이다. 아니 해석하지 말고 그냥 즐기라는 말이다. 귀한 시간 내고 돈 들여 영화관에 들어온 당신, 머리 싸매지 말고 빛과 소리로 그린 그림의 향연과 만찬을 즐겨라. 젠체하는 수많은 영화 리뷰와 감상평을 멀리하라. 감독이 원하는 것은 그것일테다. 그저 보는 게 최선이다. 



거창한 서사(위대함)가 없는 착하고 따듯한 삶도 가능하다는 것, 영화를 영화답게 보는 것,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데이빗 로워리의 익살스런 대답,을 음미하는 것으로 족하다. 데이빗 로워리가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피터팬 이야기란다. 두 편의 초기 전작들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려나 보다. <고스트 스토리>와 <미스터 스마일>을 거쳐 <그린 나이트>로 실컷 젠체한 감독이, 이제 신나게 제대로 놀아볼 참인가 보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실컷하려고 벼르고 있다 보다. 


시대와 함께,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하는 쪽은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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