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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Sep 27. 2021

<오징어 게임> 플랫폼 착시 효과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 플랫폼은 기회의 창이라기보다 플랫폼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장이 되어가는 듯하다. 결국 '세계적으로 통한다'는 말은 서사나 극의 높은 완성도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적으로 높은 표현 수위와 동의어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는 일단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끈다는 말이 통하는 세계(플랫폼이)다. 많이 본 콘텐츠는 좋은 콘텐츠라는 말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 좋은 드라마거나 큰틀에서 좋은 이미지의 연쇄(영화)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 배우들의 열연이라는 것도 서사와 이미지와 조화로울 때 하는 말이다. 40-50대가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면서 생기는 아재들의 연민과 그때 그시절에 대한 추억팔이가, 오늘이라는 불공정한 현실을 눈 가리거나 합리화하는 서사 전략으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아재들의 징징거림을 언제까지 봐야하나?



그 과정에서 젠더 의식이나 젠더 감수성은 바닥을 치고 여성 캐릭터는 수단이 되거나 도구화하는 데 그치는데다 동년배 아재들의 위악과 위무를 애써 변호하는 식의 막장 전개, 딱 그 나이 아재들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한계를 밑도 끝도 없는 높은 수위의 폭력(쌈박질)과 성적 묘사에다 버무리는 것 역시 그 세대들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넷플릭스 조회수, 시청률 1위라는게 영화적 성취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고리타분한 영상물을 플랫폼 착시 효과에 기대 K-콘텐츠라 치켜 세우는 언론도 문제다. 비평이라곤 눈을 닦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지경,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청률•조회수•재생수 1위를 하면 K-콘텐츠에 등극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플랫폼에 올라타려고 난리법석이다. 모든 수익은 플랫폼이 쓸어 담고 다양성은 쪼그라드는데도 말이다. 이런 드라마(영화)는 나쁘다거나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적절한 비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고 닥치고 호평이 문제란 말이다.



콘텐츠 역시 다양성의 소멸은 결국 모두의 파멸이다. 우화라고 하거나 판타지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다. "재밌잖아!"에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된다. 어떤 이들의 '재미' 탓에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방식으로 재미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재미를 느껴도 되는가?"라고도 물어야 한다. 오히려 더 많은 불편함이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플랫폼의 착시 효과를 상쇄할  있는 , 시청자(관객) 몫이다.  봐도 되는   보는게 그만이고 보겠다면 주체적 보기와 읽기, 그리고 질문하기가 필요하다. <도가니>  불편함이 <오징어 게임>에서는 글로벌 플랫폼을 핑계로 여과없이 활개를 쳤다.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근사했는데, <오징어 게임> 서사적으로도 씬의 전개와 배열에서도 되려 퇴행한 느낌이다.


영화는 창백하고 너무 비실비실하다.



우리는 이미 판결이 내려진 세게에 도착한다. 
생의 어떤 순간 우리는 공적으로 기소당한 사람들의 자리에 놓여,
비난의 손가락질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돌아가다>, 250쪽, 문학과지성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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