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성 Apr 27. 2022

<미쓰백>, 한지민이라는 배우

<미쓰백>(이지원, 2018)


1

영화는 초반부터 활활 타오른다. 영화는 이야기 전개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규칙을 따를 맘이 없다. 미쓰백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가 수시로 겹치며 뒤죽박죽이다. 신파라고 퉁치고 얕잡기에는 힘이 넘친다. 우직하게 할 말 하겠다는 감독의 연출과 보여줄 것 말갛게 보이겠다는 절실한 연기는 보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원 없이 찍고 후회 없이 보여주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신파는 자기 이야기가 달리는 연출이 쓰는 속 보이는 꼼수고 과잉 연기는 내공이 달리는 배우가 무너지는 순간이라면, 영화 <미쓰백>은 그 사이를 당당하게 가로지른다. 이지원 감독의 첫 장편, 이만하면 근사하고 절실하다. 한지민 역시 임자(연출과 감독)를 제대로 만났고 날아올랐다. 여자 배우가 더 다양한 모습을 그릴 수 있는 판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갈수록 오롯하게 반짝이는 한국(독립 저예산) 영화가 쏟아진다. 영화 <미쓰백>은 여성 감독, 여성 주연은 할 수 없다는 편견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2

영화 <미쓰백>은 뜨거운 감정을 다루면서도 관객의 개입을 매몰차게 밀어낸다. 생명과 평화 혹은 정의는 너무나 크고 놀라운 관념이어서 자칫 거기에 빠지면 헤어 나올 구멍이 없다. 구원은 결국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매일의 삶 속에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있어야 할 화해와 일치를 잃고 얻은 생명, 곁에 있는 생명과의 평화를 포기하고 일군 정의,가 삐걱거리는 이유다. 현재를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실존이 과거를 윤색하고 주야장천 미래만 예측하는 얼빠진 사유의 꼬임에 빠지면 답이 없다. 그들이 만들어 간다고 착각하는 현재는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을 불쏘시개 삼았을 테니까. 영화 <미쓰백>은 그 역학 구도와 관계를 세심하게 헤집는다.




3

영화 <미쓰백>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간단하다. 미쓰백은 아이에게 생명과 평화를 지금 가져다주는 것이 과거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미래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영원(미래)에 대한 사모는 현재와 과거를 바로 잡는 데 있다는 것을 미쓰백은 '몸'(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오늘 한 끼를 먹는 것, 하룻밤 같이 지내는 것, 입을 거리를 마련하는 것, 시간은 멈추고 흐르지 않거나 혹은 너무 빨리 흘러 잡을 수 없는 순간을 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고 미쓰백은 말하는 것 같다. 미쓰백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싶다. 가부장제가 쓴 신화적 모성의 허구가 아닌 생명끼리의 평화와 연대로 믿음직한 동지가 되어 살아가지 싶다. 그 선택과 걸음에 박수를 보탠다.


0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 아니다. 한지민이라는 배우를 이렇게 쓰지 못하는 연출의 게으름, 한국 영화는 이 지점에서 반성해야 한다. <미쓰백>에서 한지민은 끝내 준다.



덧) 

다행히도 고맙게도 2019년 <제19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에서 한지민은 올해의 여자 배우상을 받았다. 눈 밝은 감독들이 이지원 감독의 연출과 한지민의 연기를 지지해줘서 기뻤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징어 게임> 플랫폼 착시 효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