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어떤 풍경, 어떤 색은 '마음의 통증'이 아니라 '몸의 통증'을 일으킨다. 사람은 마음의 통증을 위해 소설을 사고 영화를 틀고 그림을 건다. 마음의 통증은 사람을 뜨겁거나 차갑게 하지만, 몸의 통증은 사람을 진실하게 만든다. 검은색은 색이라기보다 색이 없는 상태고 빛이 없는 상태다. 색의 없음, 어떤 과잉이자 어떤 말 못할 상태 , 검은색은 알 수 없는 깊이와 우주 저 너머의 닿을 수 없는 먼 공간을 떠 올리게 만든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은 검[현(玄)]고 땅은 누렇[황(黃)]다'고 했다. 검을 현(玄)은 그저 검은 것(black)이 아니다. 검다와 검은 빛이라는 뜻에서 하늘과 하늘 빛, 멀다와 그윽하다,는 뜻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한자 문화권에서 검은색을 뜻하는 다른 글자는 '묵(墨)'과 '흑(黑)'이 있다. 흑(黑)은 그야말로 검은 색, 그러나 흑(黑)은 이내 부정적인 의미로 떨어진다. 흑심(黑心) 음흉하고 올바르지 않은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다. 묵(墨)은 그저 검다는 뜻으로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데 자주 쓰였다.
그림을 보면서 하늘을 이고 있는 땅, 땅을 품고 있는 하늘이 떠올랐다. 검은 색[현(玄)]이 되어가는 회색은, 차라리 고요하다. 어떤 외로움은 쓸쓸함이 아니라 고요함으로 우릴 데려다 놓는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질 때, 사람은 '슬픔(마음의 고통)'을 느끼지만, 너무 멀어 아득해지면 느낄 수 있는 몸의 통증은, 차분한 '성찰'의 기회다. 검어지는[현(玄)] 그림에서 되려, 새로운 '시작[기원(紀元)]을 읽는다. 거기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