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자초한 비극, 읽지 않는 시대
말이 범람하는 시대, 스마트폰으로 읽는 시대에 글은 죄다 말이 되고 있다. 휘발하는 말들의 범람, 책임지지 않아도 될 법한 말들의 향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나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 읽을 게 없다. 나도 한때 말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뜨거우면서도 날카롭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의식했고 떠올리고 상상하기도 했다. 말의 사람들을 읽고 닮고 싶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고 스스로 말을 유폐하기 이르렀다. 말할 일을 최대한 줄였다. 조금 미안했지만 금새 잊혀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점점 말을 못하겠더라. 말수를 줄였더니 말할 일이 줄더라. 줄일려고 노력 했더니 말할 일이 실제로 적어졌다. 사람 사이 소통은 가능한가? 말로 하는 소통의 한계와 무기력함, 정확히 말하는 것과 분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시대, 말은 그저 뭉툭한 칼이(되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전설이 있(었)다.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사람들은 이제 읽지 않는다. 말하는 것을 그저 본다. 글이 잘못했다. 말할 기회를 빼앗고 자기들끼리만 썼다. 무슨 말인지 모르게 했고 아는 척 잘난 체 했다. 모두가 말하고 싶어한다, 모두가 말하기 시작했다. 글이 권력이었고 점점 권력이 되어갔다. 스스로 취했다. 몸에서 시작하지 않은 글, 땅에 뿌리박고 내리지 못한 글이 자초한 비극, 꼬방시다.
긴 글은 옛날 사람이나 하는 짓, 최악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 생각할 시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스마트폰 각종 메신저는 굳이 쓸 필요를 없게 만들었다. 말의 시대, 그래도 쏟아지는 책과 잡지를 보면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도 기어이 쓰려는 사람들이 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건 뭔가 싶다. 보고 듣는 시대, 기어이 쓰고 읽(으려)는 사람들, 담론 자체와 담론 주체의 전복, 슬프지만 희망이 거기 있다.
“황제께서 저를 검으로 지켜주신다면,
저는 폐하를 펜으로 지켜드리겠습니다.”
(윌리엄 오컴)
뱅상 말로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