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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May 13. 2022

대니 샤피로,라는 작가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마티,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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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번역한 작가를 읽는 일은 늘 두근거린다. 글 보는 눈과 책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몇 군데 읽은 것으로 한 작가를 온전히 파악하는 건 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대니 샤피로, 제목이 맘에 들었고 '들어가며'라고 쓴 머리글을 경쾌하게 읽었다. 적당한 길이라 몇 번이고 읽어도 좋을 글이다. 짧은 글에 진심과 몸으로 낸 흔적을 길어 넣는 솜씨가 매력 있다. 또 한 명의 작가를 이렇게 만났다. 한유주의 번역은 여전히 믿음직하고 사려 깊다. 좋은 작가와 성실한 번역가의 만남, 출판사에 대한 믿음과 번역가에 대한 신뢰가 책을 집도록 만들었다. 대니 샤피로의 글은 "풍부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2

솔직하게 쓴 글이어야 좋은 글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쏟아낸 단어와 문장을 모으기만 해도 좋은 글이 된다면 읽기는, 공부는, 사유 훈련(특히 젠더와 계급에 대해)은 필요 없을 테다. 글에 삶이라는 시간을 몸으로 녹여 좋은 글로 빚으려면, 맞서 읽기와 살펴 읽기라는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더듬거리고 사랑하고 패배하고 두려움에 무릎을 꿇어 본 삶"은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솔직한 글쓰기를 때려 눕힌다. 짧건 길건, 인용이 많건 자기 경험을 쓰건 상관없다. 말은 글이 아니다. 글을 쓰고 묶는 것, 글을 묶어 책을 쓰고 내는 것이 쉬워지면, 책의 종말은 더욱 가속화되지 싶다. 슬픈 일이다.


대니 샤피로(Dani Shapiro)


3

에세이(수필)의 홍수는 징후적이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사회는, 그 속에서 현재의 행복을 애써 찾아야 하는 이들이, 퇴근 후에•주말에•공휴일에 '골치 아픈 것'을 읽고 보고 듣는 것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공포가 개별화되고 일상화된 탓이다. 수없이 많아져 비평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OTT 콘텐츠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 문학과 예술은 너무 쓸모가 많아졌다. 안 읽는데도 읽을 거리가 넘치고 소설과 시도 넘친다. 홍수는 가뭄을 걷지 못하고 모든 걸 쓸어 버린다. 이러다 진짜 다 죽는다.



0

이 책에는 '쓰기'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쓰기와 상관 많은 지혜가 가득하다. 이토록 살갑고 구체적이면서도 통찰 가득한 애정어린 조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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