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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pr 26. 2022

김현진,이라는 건축가

<진심의 공간>(자음과모음, 2017)



문과 계단


시끄러운 곳에서도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다. 주변 상황이야 어떻든, 아무렇지 않게 주의를 끄는 책 탓에, 버스건 지하철이건, 산행을 마치고 거나하게 취해 몹시 떠드는 어르신들이 함께 있는 무궁화 객실에서건, 서 있든 걷든 읽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는 책이 좋은 책이다. 두 번째 읽었고, 시시때때로 이곳저곳 펼쳐 읽는 <진심의 공간>은 늘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 지은이는 건축과 집에 대해 쓰면서 문과 계단을 맨 처음 말한다.


영화 <라빠르망>에 등장하는 계단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가득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계단, 카메라의 위치와 계단의 교차는 계단에 대해 아는 자의 시선이다. 계단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은데 짧아서 아쉽다. <진심의 공간>은 공간과 시간을 깊이 사유하되 개별 사물의 쓰임새를 조심스레 살핀다. 글과 엮은 사진도 그만이다. 읽은 책 목록을 슬쩍 흘리고 글을 마칠 때마다 지은이 자신이 쓴 시를 용기 내 엮어 실었다. 쓰고 읽고 찍는 이가 어떤 것을 즐겨 듣고 보는지 괜스레 궁금하다.




"중복된 우주"


장과 장 사이가 짧(게 읽힌)다. 읽다 보면 한 장이 벌써 끝나는 게 아쉽다. 아쉬워서 조금만 더 길게 이야기해주길 바라고 조금 더 많은걸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일렁인다. 글과 사진과 시를 적절하게 구성하고 배열했다. 사진도 좋다. 가령 '문'을 이렇게 찍은 건축가의 책 혹은 사진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건축가의 색다른 시선, 책의 구성과 배열, 사진도 시도 건축하는 이인 지은이를 쏙 빼닮은 게 틀림없다.


글은 치밀한데 여유 있고 사려 깊으면서도 감각적인 데다 단단하다. 문장 사이 폭이 넓어 읽으면서 리듬이 느껴지는 글, 이런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닮고 뺏고 싶은 글쓰기다. 건축은 이과 계열 중 인문학적 소양이 꽤나 필요한 학문이 아닐까. 글 엮은 책 역시 "중복된 우주"다. 시간과 공간에서의 사건, 삶과 만남, 배움의 과정이 잘 어우러져야 글은 솟아오른다. 지은이의 글에서 존 버거가 어른거린다는 생각, 나만의 착각이어도 별 수 없다. 김현진의 글은 "중복된 우주"사이로 오롯하게 솟아오른다.




문과 경첩


사진은 덕유산 백련사 삼신각 문에 달린 경첩(을 내가 직접 찍은 것)이다. 옛날에 만든 경첩은 대장간에서 무쇠를 단련해 만들었다. 나무문이지만 궁궐이나 절 지은 금강송으로 만든 문은 무게도 꽤 나간다. 소나무는 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고,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럽다고 '여송(女松)'이라고도 부른다. 적송은 소나무의 일본식 이름이다. 소나무는 단단하고 쉽게 썩지  않으며 벌레 먹거나 휘거나 갈라지지도 않는다. 궁궐이나 사찰을 만드는 데 주로 쓰였다.


특히 궁궐을 짓는 목재는 소나무 외에는 쓰지 않았다고 한다. 2m도 넘는 큰 나무 문 아래 경첩이 위아래 하나씩 달렸다. 문을 열 수 없어 문틈에 고정된 부분은 어떤 모양새로 문을 붙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진심의 공간>에서 읽은 내용 탓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새삼스레 다시 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심의 공간>에서 읽은 덕에 백련사 삼신각을 요모조모 뜯어볼 수 있었다. 문과 계단, 창과 지붕을 꼼꼼하게 쳐다봤다.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 데 있어서 공간이 주는 충격은 강력한 촉매다. 높이 오를수록, 멀리 갈수록 우리가 보는 것은 경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맞다. 산을 오르는 이유다.




영혼을 뒤 흔드는 공간


느리게 읽다가 군데군데 고개를 끄덕인다. 잊고 있었던 것, 생각만 했지 미처 말로 옮기지 못해 애태웠던 것들이다. 오래 머물러 몇 번이고 되뇌고 다시 읽는다. 공간과 풍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 고창 선운사 만세루를 잊을 수 없다. 대들보에 잇댄 서까래 어느 것 하나 곧고 바른 게 없었다. 심지어 대들보와 대들보를 바치는 기둥도 곧은 게 하나 없다. 어떤 기둥은 굵기가 다른 나무를 잇대어 받쳐 두었다. 보고 있자니 신기하고 흐뭇했다.


추녀를 잇는 서까래와 지붕 귀에 걸리는 서까래도 제각각이다. 굵기도 크기도 다른 나무를 이어 지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고루 나누는 지혜, 삐뚤고 제각기 다른 나무를 이어 붙여 무게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잡는 지혜가 분명하다. 과학이나 수학만큼이나 정교한 감각, 벽채며 외부 기둥도 같은 나무가 하나 없고 똑같은 모양의 나무가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다.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다 적게 만져 지은 게 틀림없다. 자연은 죄다 삐뚤 빼뚤하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우리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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