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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3. 2022

<너는 여기에 없었다>, 역시 린 램지

<너는 여기에 없었다>(린 램지, 2017)



행간(에 담긴 뜻)이 너른 문체를 좋아한다. 영화도 마찬가지, 장면 사이가 널직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 그 간극이 헐거우면 지루하고, 좁으면 갑갑하다. 덜어내고 이어붙이기(편집)는 그래서 중요하다. 독자를 신뢰하지 않고 관객을 믿지 못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조바심내는 글•영화는 밉고 애처롭다. 술술 풀어내고 훌훌 벗겨내는 영화가 있다.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예상보다 더 불친절하다. 마치 영화 중간을 뚝 떼어 보는 것처럼, 분절하고 흔들리며 신경질적으로 짧게 짧게 파고드는 과거 인서트 숏은,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육체와 내면을 어떻게 괴롭히고 파괴하는지에 대한 생리학적이고 현상학적인 표현이다. 둥둥 뜨고 흔들리는 이미지, 그 순간 순간 당겨찍기(클로즈업)는 효과적이고 묵직하다.




반면 으깨고 찌르고 자르는 살인 청부 일상은 반대로(의도적으로) 멀리서 찍기(롱쇼트)로 표현했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의미없는 일상, 마지막 복수 현장은 CCTV를 통해 흑백 무성 영화처럼 그렸다. 살아있지만 죽은 거나 진배없이 그저 흐르고 녹아내리는 삶, 한줄기 빛(구원)은 궁지에 처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소녀를 통해 통속적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서사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 잇고 덧대 오프닝 타이틀부터 시도 때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깔리는 조니 그린우드의 사운드와 스코어도 매력 넘친다. 새로운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겉 멋 든게 아니라면, 진부한 이야기에 상투성을 벗겨내 독특한 인장을 아로새기는 연출과 영상, 편집만으로도 충분하다. 작가마다 문체가 있듯, 린 램지는 다시 한 번 자기를 넘어 서려고 노력 중이다.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번뜩이고 숨막히는 (국내 첫) 개봉작, 이후 6년 만이다. 후아! 린 램지는 이번에도 우아하고 예리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대담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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