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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3. 2022

<우리 가족 : 라멘샵> 에릭 쿠의 변화

<우리 가족 ; 라멘샵>(에릭 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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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보수적(?)이 된다고들 한다. 밑절미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 : 라멘 샵>은 징후적이다. 에릭 쿠의 영화가 해피 엔딩이라니, 글로 읽은 그의 영화는 우울하게 느리고 무심하게 잔인했다. 싱가포르란 성공한 도시가 그의 영화에서는 분열과 단절, 우울이라는 병증 가득한 디스토피아로 그려졌다. 에릭 쿠 영화 <내 곁에 있어줘>를 처음 본 건 2011년이나 되어서였다.



2

200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내 곁에 있어줘>가 국내 배급되어 상영되었는지 모르겠다. 2011년 에릭 쿠는 (아마 정성일 초청으로)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CINDI) 경쟁부분 심사위원 자격으로 방한했다. 그 무렵 서울 압구정 CGV를 오가며 그를 만날 수도 있을까 설렜던 기억이 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어렵게 구한 영화 파일, <내 곁에 있어줘>(2005)는 가슴 아래 께를 무겁게 짓눌렀고 알싸했다. 이 후 DVD를 구했다.


에릭 쿠 감독


3

에릭 쿠 감독이 연출한 자살로 끝맺는 초기 3부작에 대해 글로만 읽었다. 3부작 중 세번째 영화 <내 곁에 있어줘>도 끝내 스크린을 피로 물들이며 맺는다. 언제나 그렇듯 에릭 쿠가, 영화에서 서사의 중심 축을 끌고 이어가는 매개는 '음식'이다. 음식 영화가 아닌데도 음식 만드는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감싸 안는 그의 연출은 남다르다. 에릭 쿠는 영화에 작은 위로와 탈출구 혹은 쉼표를 음식(만드는 과정)으로 찍고 담는다.




4

세월 따라 변해가는 감독 탓할 맘은 없다. 고로에다 히로카즈도 첫 장편과 두 번째가 좋았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왕가위와 지아징커의 초기작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초기작을 세상이 영화가 될 것처럼 찍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 여전히 찍는 이들은 변화가 크다. 할 말을 다해서인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다. 음식 영화처럼 홍보하고 있는 <우리 가족 : 라멘샵>을 수입하고 배급한 곳은, 에릭 쿠의 변화와 어쩌면 한 시대의 쓸쓸한 퇴장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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