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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4. 2022

조재룡,이라는 번역가



겨울에는 조재룡의 만연체가 그만이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길고 처연하게 이어지는 글 속에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린다. 언젠가 황현산 선생이 말했다. "그가 오기 전까지는 한국시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이렇듯 세밀화로 그려진 적이 없었다." 꼼꼼하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성실함, 아니 치열함, 아니 끈질김, 아니 사람됨, 아니 태도 혹은 실연, 아니, 아니, 아니...


비평은 사건과 사태에 대한 해석이다. 질문이 해석을 낳는다. 바른 해석은 결국 다르고 바른 질문이다.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을 바꾸는 것, 질문을 비트는 것, 다시 질문하는 것, 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을 끈질기게 묻는 것, 그리고 그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결국 시인하는 것, 결국 우리는 번역을 읽는다. 한국말로 된 사건에 대한 작가 쓴 번역, 결국 이야기...



조재룡(선생의 글)은 호흡이 길다. 그 긴 호흡은 때로 난해하(다 불리운)다. 조재룡의 긴 호흡은 “사활을 걸고 기투하는 언어의 모습을 오롯이 쫒아가려고, 담아내려고, 그 윤곽을 짚어내려고” 버둥거리는 끈질긴 구애(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긴 호흡(의 글)에서 난, 내 지적 게으름과 '무엇'에 대한 애정의 보잘 것 없음을 본다. 


조재룡의 글이 난해하다는 지적은 오독이자 오해다. 긴데다 난해한 그의 글은 다채롭다. 꽤나 긴 호흡의 글에서 그가 보여주는 다채로움은 되려 단단한데다 간결하고 명징하다.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다. 끈질긴 구애가 불발과 실패의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낸 영롱함과 그 과정에서 묵직해지는 논리의 정연함이 그리 읽힌다.




애정이 없고 전전긍긍해 본 적 없이도 젠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비평의 오만함을 그에게선 찾을 수 없다. 길고 난해하다 일컫는 그의 글에 마음과 시간을 쏟으면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 되려 또렷해지고 콕 짚힌다. 머뭇거리느라 길어지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느라 난해한 (듯 보이는) 그의 글에 고마움과 지지를 보낸다.


작가 혹은 비평가, 번역가의 숙명은 얄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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