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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4. 2022

김현,이라는 비평가


헌책방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책 구하러 시간날 때마다 헌책방을 이잡듯 찾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하도 자주 가고 주인장과 친해지면 구하던 책을 빼 두었다가 챙겨주기도 하고 말만 잘 하면 거의 거저 주기도 하던 낭만적인 시절이 있었다. 헌책방의 독특한 책 곰팡이 냄새, 몸 건강에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건강에 그만한 냄새는 다시 찾기 어려울꺼다. 


김현이 말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의 풍경> 초판(1990년 12월 20일)본을 구하러 헌책방을 이 잡듯이 헤맨 적이 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두 권을 만나긴 했지만 터무니 없는 가격에 뒤돌아섰다. 90년 말에 나온 초판 가격은 3,800원, 2000년대 중반 물가를 고려해도 2-3만원 달라는 말에 기가 찼다. 헌 책이 고가에 거래되는 상황,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전집에 엮인 <말들의 풍경>이야 진작 갖고 있었지만, 단행본을 구하고 싶었다. 집착을 내려 놓을 즈음 동인회 도장이 사방에 찍힌 2쇄(1991년 2월 28일)를 1,500원에 구했다. 2쇄가 두 달 만에 나온걸 보면 그 시절 김현(1942. 7 - 1990. 6) 인기나 문학 비평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가 짐작된다. 유작이니 더 그랬겠지.


만년의 김현 글쓰기가 품은 그 너름과 깊음, <말들의 풍경>에서 ‘모국어로 쓰기’의 아득한 어떤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컴퓨터로 만들지 않은 옛날 조판책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누렇게 바랜 부분이 점점 영토를 넓혀가는, 산화가 진행 중인 책을 만지작거리면 기분이 좋다. 책의 일생, 책이 바스라지는 것처럼 쇠잔해가는 육체와 책의 물성이 겹치는 새삼스런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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