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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7. 2022

푸코와 알튀세르, 데리다와 들뢰즈



지바 마사야는 78년생이고 아즈마 히로키는 71년생이다. 한 사람은 철학자, 다른 사람은 비평가이자 소설가다. 철학자가 들뢰즈를 색다르게 파고 들고 소설가가 데리다를 나름대로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눈 먼 사람 코끼리 다리 더듬는 듯 하는 것인지, 아니면 큰 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등산로로 산을 독특하고 신박하게 타면서 소개하는 것인지를 살피고 헤매지 않는 일이다. 한 사람이 커다란 사상가를 단숨에 제압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부분으로 전체를 침소봉대해서 궤변 일삼는 이들은 곳곳에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을 믿었지만 구조주의는 역사에서 작동하고 있는 관계들의 패턴=구조를 주목한다. “구조주의에 따르면 문화는 구조의 반복에 의해 추동되어 온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사물 구조 자체에 깃든,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부분을 주목하고 구조의 변화를 사유”하는 이들이다. 양차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부터 시작되는 프랑스 철학•사상의 흐름을 눈여겨 봐야 한다. 후기구조주의 중심 인물은 들뢰즈가 틀림없다. 철학자 이정우 선생은 들뢰즈로 들어가는 너르고 탄탄한 입구 중 하나다.


  


데리다는 주로 철학•사상의 텍스트를  표적 삼아 텍스트들의 논리 구조에 잠복해 있는 구멍이 아이러니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벗겨내는 데 주력한다. 들뢰즈는 사물•마음•뇌•신체가 다른 구조로 차이생성변화를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존재론의 차원에서 긍정했다. 철학사 전체를 아우르고 가로지르며 어긋내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이르는 입구는 다양하다. 원전에 주눅들 필요 없다. 다양하고 비판적인 수용론을 입구 삼아 원전을 넘나들고 들락날락거리며 찬찬히 읽고 알아가면 된다.





전세계적인 사상적•과학적 담론과 논의를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한다는 일본의 번역 인프라가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젊은 학자들이 언어 장벽없이 최신 논의를 읽을 수 있으니 짧은 시간 숙성된 나름의 수용론을 마구 쏟아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지바 마사야와 아즈마 히로키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이르는 흥미롭고 꽤나 근사한 입구들 중 하나다.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철학적 수용론인데 들뢰즈와 데리다에 대한 또 다르게 근사한 출입구 중 하나다.


게다가 옮긴이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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