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0회 오스카 시상식은 여러모로 인상깊었다. 가장 반가웠던 장면은, 로저 디킨스(Roger A. Deakins)가 촬영상을 '드디어, 이제서야' 거머 쥐었다. 열 세 번 후보에만 올랐다가 열 네 번째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아카데미 촬영상(Best Cinematography)을 수상했다.
로저 디킨스가 찍은 부감 숏을 좋아한다. 떠오른 카메라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의 부감 숏은 감정을 머금는다. 최대치의 원경으로 펼쳐낸 지평선에 아련하게 걸친 인물을 로저 디킨스가 잡아낼 때 역시 할 말을 잃는다. 로저 디킨스의 필모그래피, 어떤 영화를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는 인상적인 장면은 죄다 로저 디킨스의 것이다. 자신만의 인장이 뚜렷한 촬영 감독, 필모그래피만 보면 왜 이제야 오스카상을 받았는지 의아하다.
<쇼생크 탈출>(1994)에서 감옥을 탈출해 억수같이 내리는 비 속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오열하는 팀 로빈스를 잡는 부감 숏, <데드 맨 워킹>(1995), <파고>(1996)의 눈 덮힌 길을 걷는 장면을 잡아 낸 부감 숏, <쿤둔>(1997)의 부감과 <위대한 레보스키>(1998)의 위악적이고 코믹한 컷들, <뷰티풀 마인드>( 2001)에서 수학공식으로 가득한 강박적인 방은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인용되는 원형에 가깝다. <모래와 안개의 집>(2003)의 안개 낀 서늘한 집과 회색빛 하늘, <빌리지>(200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는 두 말할 것도 없고,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에서 목 메고 자살하는 장면, 책을 밟고 올라서는 처연한 발 끝은 케이트 윈슬렛 것이지만 그 장면은 로저 디킨스가 찍었다. <시리어스 맨>(2009), <더 브레이브>(2010), <007 스카이폴>(2012),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의 비밀 터널 속 총격 씬, <헤일, 시저!>(2016),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로 '마침내' 촬영상을 수상했다.
로저 디킨스는 코엔 형제의 눈이었다. 코엔 형제와 열 두 작품을 찍었고 최근에는 드니 빌뇌브와 세 작품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