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밝이술과 함께 부럼깨기
귀밝이술과 함께 부럼깨기
부럼깨기는 정월 대보름 아침 일찍 일어나 '부럼'이라고 하는 호두·잣·밤·땅콩·은행 등을 깨물면서 "1년 내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종기)이 나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빌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민속이다.
이러한 민속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등의 옛책을 보면 부럼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부럼깨기는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齒]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으로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다. 다른 말로 ‘부스럼(또는 부럼)깨물기’라고도 하고 ‘부럼먹는다’고도 한다. 또한 그러한 견과류를 일반적으로 ‘부럼’ 또는 ‘부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럼의 한자 표기는 다양하다. 『경도잡지(京都雜志)』,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도애시집(陶厓詩集)』 중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에 작절(嚼癤)·고치지방(固齒之方)과 같은 용어가 보이고, 『담정유고(藫庭遺藁)』에는 이와 비슷한 뜻의 ‘양뇌아(養牢牙)’라는 말이 있으며,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는 ‘작옹(嚼癰)’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종과(腫果)·소종과(消腫果)라고 부르기도 했고,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교창과(咬瘡果)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부럼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다만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 세시기류나 죽지사류 기록에 그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온 민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해동죽지(海東竹枝)』의 기록에 의하면 “옛 풍속에 정월 대보름날 호두와 잣을 깨물어 부스럼이나 종기를 예방하였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일반 시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 놓고서 그것을 팔았는데 집집마다 사 가느라 크게 유행하였다.”고 하여 전래적으로 부럼깨기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론 궁중에서까지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럼깨기는 부스럼을 깨물어 그것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행해지기 전에, 본디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주술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에는 “의주(義州) 풍속에 젊은 남녀들이 새벽에 엿을 깨무는 것을 치교(齒交)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치교는 ‘이 내기’로써 누구 이가 튼튼한지를 겨룬다는 뜻이다. 이러한 겨루기는 일반적으로 대보름날 고기산적[肉炙]을 만들어 먹는 것을 ‘이 굳히기 산적[固齒炙]’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담정유고』에 보이는 “호두와 밤이 어금니를 단단하게 하니, 오이처럼 부드럽게 부스럼을 깨무네.”라는 시구도 이런 관념이 오래 전부터 널리 인정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부럼깨기에는 날밤·호두·은행·잣·땅콩 등 껍질이 딱딱한 것을 이용하며, 때로는 그보다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부럼깨기에 이용되는 견과류의 종류로는 어느 한 가지를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가지를 함께 골고루 마련하여 가족 구성원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이러한 견과류를 집집마다 보름 전날 미리 물에 씻어 준비해 두었다가 보름날 아침에 식구 각자가 이것을 어금니로 힘주어 단번에 깨물면서 “부럼 깨물자!” 혹은 “올 한 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안 나게 해줍소사.” 하는 주언(呪言)이나 축원사를 함께 외운다. 부럼은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지만 노인네들은 이가 좋지 않으므로 몇 개만 깨문다. 깨문 부럼은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한번에 깨문 부럼은 마당에 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스럼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치아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옛날에는 먹을 것도 많지 않고 따라서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곧잘 부스럼이 나고 버짐이 피곤 하였다. 그래서 호두나 땅콩 같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미리 먹여 피부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하다.
부럼깨기 풍속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설날에 “도소주와 교아당(膠牙餳)을 올린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교아당은 엿기름으로 만든 엿을 말하며 정초에 이것을 올린다는 것은 곧 엿을 깨물어 이의 강함을 겨루는 우리나라의 의주 세시풍속과 같은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정초에 ‘齒固め(하가타메)’라는 ‘이 강하게 하기’ 관행이 조정과 재야를 통하여 두루 행해졌던 것도 우리의 경우와 유사한 민속이라 할 수 있다.
부럼깨기는 본디 견과류를 깨무는 것으로, 이를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인류 공통의 주술적 사고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다가 종기를 동반한 피부병이나 전염병의 현실적 위험이 크게 의식되면서 부럼깨기라는 말로 변하고, 정초 세시풍속으로서의 특징에 따라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 더해져 주술성과 축원성을 띠는 한국적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