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 淸明
청명 淸明
청명은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들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오동나무를 심었다한다. 이날 보통 성묘를 간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음7월15일), 가을에는 추석, 겨울에는 동지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뵙고 산소 위의 눈을 쓸어 내렸다. 성묘의 형식은 분묘의 손질과 배례로 나누어지며 주로 설·한식·추석에 행해진다. 설에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를 조상의 묘에 고하며, 한식에는 겨울 동안 무너진 산소를 살펴보고, 추석에는 햇과일과 곡식을 조상께 바치는 의미를 가진다.
농사력으로는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청명 무렵에 논농사의 준비 작업인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한다.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로 날씨와 관련된 속신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점친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서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파도가 세게 치면 물고기가 흔하고, 날씨가 맑아도 물밑에서 파도가 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경남 사천에서는 청명날의 날씨가 좀 어두워야 그 해 농작물(農作物)에 풍년(豊年)이 들고, 너무 맑으면 농사(農事)에 시원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해도 좋다고 믿는다. 또 이날은 손이 없기 때문에 묘자리 고치기, 비석 세우기,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 일이나 해도 좋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2012년부터 4월 4일을 청명절로 공휴일로 하였다. 이는 식목일을 공휴일로 한 맥락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천도교가 이날 쉬기 때문이다. 최제우가 경신년(1860년) 한식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청명날 북한 주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고 시루떡과 청포무침 등 전통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청명은 추석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민속 명절 중 하나로 꼽한다. 이 시기에 북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벼와 옥수수, 조, 고구마 등 여러 작물의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중국과 대만에서도 휴일이다. 단, 대만의 어린이날은 4월 4일인데, 해에 따라서 어린이날과 청명이 겹치는 경우가 있다. 이 해는 4월 3일도 휴일로 한다. 단 4월 4일이 목요일이면 3일이 아닌 5일을 휴일로 하여 연휴를 만든다.
중국의 청명절은 춘절(春节 chūnjié [춘지에], 음력 1월 1일), 단오 (端午 duānwǔ [뚜안우], 음력 5월 5일), 중추절(中秋, zhōngqiūjié [쭝추], 음력 8월 15일), 국경절(国庆节, 10월 1일)과 함께 중국의 5대 공휴일로 여겨지고 있다. 청명절은 동지[冬至] 로부터 100일 되는 날로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낸다. 또, 이날은 죽은자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제사상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해서 중국의 3대 귀신제(鬼节)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 청명절은 미식절(美食节)’이자 여인절(女人节)이었다. 미식절이라 함은 따사로운 봄날 꽃들이 만개하면서 맛좋은 음식들이 시장에 나오고, 한식절의 특색있는 음식들이 전승된 데 기인한다. 고대 여인들은 평소 얼굴을 드러내고 외출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청명절이면 여인들은 정성껏 외모를 치장하고 바깥으로 나와 제사를 지내고, 답청을 즐겼다. 이로 인해 여인의 청명, 남자의 해(女人的清明,男人的年)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청명은 양력 24절기 중 5번째에 해당한다. '봄빛이 완연하고 공기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때'란 의미로, 봄 농사를 준비하는 절기다. 반면 한식은 양력 24절기가 아니라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한식은 '찬 음식'이란 뜻으로 춘추시대 진(晉)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개자추는 진 문공(文公)과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으나, 집권한 문공이 그를 등용하지 않자 산 속으로 몸을 감췄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불을 질렀는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이후 개자추가 죽은 날(한식)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
효(孝)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청명절 휴일 기간을 활용해 지난 1년간 비바람에 시달린 묘지를 살피러 간다. 이것을 ‘扫墓 sǎomù [사오무]’라고 한다. 우기가 찾아오기 전 조상의 묘를 찾아 흙을 고르고 산소를 돌보는 것이다. 이때 종이돈 또는 돈 모양이 그려진 종이인 ‘지전 纸钱 zhǐqián [즈치앤]’을 산소 앞에서 태운다. 중국인들은 사후세계에서 조상님들이 ‘지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사음식을 바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최근에는 시계, 지갑, 자동차, 집 모양의 지전을 만들어서 태우기도 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그네타기 荡秋千 dàngqiūqiān [땅치우치앤]’, ‘축구 蹴鞠 cùjū [추쥐]’ 등의 청명절 풍습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잘 하지 않는다. 요즘 중국 청명절에는 살랑이는 봄바람에 ‘연날리기 放风筝 fàngfēngzheng [팡펑정]’를 많이 한다. 중국에서는 평소에도 날씨가 좋거나 바람이 잘 부는 날이면 연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대학가 근처에서 연을 파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연휴이든 중국에서는 폭죽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연휴뿐 아니라 결혼식, 가게 개업 등 축하할 일이 생기면 폭죽을 터뜨린다. 우리나라에서 폭죽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의미를 두지만, 중국에서는 청각적인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는 폭죽의 소리가 악귀를 물리치고 좋은 일만 올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는다. 새로운 시작, 축하할 만한 일에 폭죽이 빠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청명이 되면,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많아져서, 봄에 파종하기 딱 좋은 절기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력이 강한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청명절에는 등산하거나 나무를 심습니다.
중국어로 청명절 맞이 등산은 ‘踏青 tàqīng [타칭]’이라고 하고 나무를 심는 것을 ‘植树 zhíshù [즐수]’라고 한다.
청명절에 먹는 음식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이날은 차가운 음식(寒食)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문화가 있다. 상하이(上海)에서는 ‘청단 青团 qīngtuán [칭투안]’을 먹는다. ‘연맥초 清明菜 qīngmíngcài [칭밍차이]’의 즙과 찹쌀을 섞어서 반죽을 만들어 그 속에 팥고물 또는 대추를 으깨어 넣고 갈댓잎 위에 얹어 쪄먹는 떡이다. 상하이의 어떤 가정에서는 청명절에 복숭아죽을 즐겨 먹고, 성묘와 집안 잔치에 갈치를 즐겨 사용한다. 꾸이저우(贵州)의 안순툰방(安顺屯堡) 지역에서는 연맥초와 밀가루를 섞어 고기, 채소 소를 넣은 ‘청명채파 清明菜粑 qīngmíngcàibā [칭밍차이빠]’를 만들어 먹는다. 모양과 만드는 방법이 만두와 비슷하다. 저장(浙江, 절강) 후저우(湖州, 호주)에서는 청명절에 집집마다 쭝쯔(粽子)를 만들어 무덤에 제물로 차리기도 하고 답청을 하러 갈 때 비상 식량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청명절에 다슬기를 먹는 습관이 있다. 이날 바늘로 다슬기를 꺼내 삶아 먹는 것을 ‘도청(挑靑)’이라고 부른다. 먹은 후 다슬기 껍데기를 지붕 위에 던지는데 이는 기와에서 나는 구르는 소리에 쥐가 놀라 도망을 가게 하므로 청명 후의 양잠에 이롭다고 한다. 쓰촨(四川) 지역에서는 연맥초와 밀가루, 고추 등을 함께 넣어 납작하게 빚어 기름에 지지는 ‘청명병 清明饼 qīngmíngbǐng [칭밍삥]’을 해먹는다. 갖은 채소들을 함께 섞어 아주 향긋한 맛이 난다. 진남(晉南)인들은 청명절을 지낼 때 밀가루로 커다란 모(饃)를 쪄낸 후 중간에 호두, 대추, 콩을 넣고, 밖은 용 모양으로 둘둘 감아 용의 몸 중간에 달걀을 넣는다. 이를 ‘자복(子福)’이라 부른다. 커다란 ‘자복’을 찌는 것은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한 것을 상징한다. 성묘할 때 ‘자복’을 조상의 영령에 바치고 성묘를 마친 후에는 온 가족이 나누어 먹는다. 지역마다 여러 조리방법을 사용해 나름대로 청명절 음식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공통적으로는 연맥초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맥초는 청명절 시기가 되면 나는 봄 채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쑥, 냉이를 활용해 음식을 해먹는 것과 비슷하다.
도청(挑靑), 쭝쯔(粽子)
자복(子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