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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Feb 11. 2021

[별책 부록] 7종 자유학예란?

- 그들만의 학문 리그

고대부터 르네상스 이전까지, 미술에 대한 인식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미술은 절대 가치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는 하위 학문이었고, 미술가는 그저 기술 좋은 모방가였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누스 등 대학자들이 미술을 언급하긴 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 정도의 극히 적은 일부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미술은 생존해왔고, 미술가와 미술관련 학자들은 오랫동안 미술이 여타 엘리트 학문과 같은 레벨의 학문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르네상스라는 전무후무한 미술 황금기를 이뤘고,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미술은 엘리트 학문으로 그 위상을 인정받게 되었다.


미술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 지위를 갖고자 노력했던, '엘리트 학문'이란 '7종 자유학예'를 말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 엘리트 시민들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학문으로 규정한 7과목의 학과 - 문법, 수사학, 변증법(논리학),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이다. '7종 자유학예'는 5세기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가 완성했으며, 이 후 과학 분과의 4학과(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와 언어 또는 인문학과의 3학과(문법, 수사학, 변증법)으로 구분되었다. 카펠라는 그의 저서《필로로기아와 메르쿠리우스의 결혼(On the Marriage of Philology and Mercury)》에서 7가지의 학문을 처음으로 의인화해 표현하기도 했다.   

카펠라의 7종 자유 학예 삽화 -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문법, 변증법(논리학), 수사학, 음악, 기하학, 산술학, 천문학 


문법은 어린이를 동반하는 교사의 모습으로 회초리를 가졌고, 변증법은 뱀과 꽃을 들고 있는데, 뱀은 신중함을 꽃은 진실을 말한다. 수사학은 혀의 검을 들고 있으며, 음악은 아름다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기하학은 음직임과 시간, 무게를 통제하는 모습, 산술학은 갈고리 모양의 손 모양의 하고있는 여성의 모습, 그리고 천문학은 천체를 상징하는 구를 들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7종의 의인화된 학문은 메르쿠리우스(웅변)가 그의 신부인 필로로기아(문서학)에게 결혼 선물로 준 7명의 하녀들이며, 이는 문서학과 웅변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하고 환상적인 학문적 소양을 표현한 것이다.  


카펠라에 의해 처음 시도된 의인화된 ‘7종 자유학예’는 그 알레고리 그대로 르네상스까지 이어져왔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자유학예모임 앞의 젊은 남자(A Young Man Being Introduced to the Seven Liberal Arts)》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시스티나 예대방의 벽화를 작업하고 피렌체로 돌아온 후, 보티첼리는 현재 빌라 렘미(Villa Lemmi) 근처 별장을 장식하는 주문을 받는다. 주문자는 당시 별장의 주인이던 메디치 은행의 로마 지사장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로, 그는 그의 아들 로렌초와 조반니 델리 알비치(Giovanni Degli Albizi)의 결혼 축하를 위해 이 작품을 의뢰했다. 당시 로마의 부호나 대시민들은 자신들의 철학적 교양과 미적인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건물의 벽과 천장을 신화나 알레고리 주제의 그림으로 장식하곤 했다. '7종 자유학예' 역시 지식의 척도와 교양의 수준을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 주제 중 하나였다. 


산드로 보티첼라《자유학예모임 앞의 젊은 남자》(1483-86) 프레스코 벽화,     루브르 박물관


젊은 남자는 신랑, 로렌초 토르나부오니이다. 로렌초의 손을 잡고 자유학예들로 인도하는 여성은 ‘문법’이다. 그녀의 곁에 있는 어린이가 이를 말해준다. 무리 중 가운데 상단에 앉은 여성은 지혜(푸르덴시아)로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로렌초의 결혼을 축복하고 있다. 지혜의 오른쪽 옆으로 산술, 변증법, 수사학이 자리하고 있고, 지혜의 왼편으로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 앉아있다. 산술은 공식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고, 변증법은 변증법석 사고를 상징하는 전갈을, 수사학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기하학은 삼각자, 천문학은 천구, 음악은 소형 오르간을 들고 있다. 카펠라가 의인화한 자유학예의 모습이 큰 변화 없이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본래 《자유학예모임 앞의 젊은 남자》는 맞은 편 벽의 《젊은 여인에게 선물을 건네는 비너스와 삼미신》과 마주보고 있었다. 결혼 선물답게, 한 쪽의 그림은 신랑을 위해 다른 한쪽의 그림은 신부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1482년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후 10년간  보티첼리는《비너스의 탄생》《봄》과 같은 사랑의 숭고함을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젊은 부부를 위해 제작한 이 두 작품 역시 그러하다. 결혼 선물로 신부가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에게서 선물을 받는 다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보티첼리의 사랑에 대한 감수성과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 벽화를 통해 드러난다.


산드로 보티첼라《젊은 여인에게 선물을 건네는 비너스와 삼미신》(1483-85)     프레스코 벽화, 루브르 박물관


우리나라와 중국의 지배층이 사서오경을 필두로 한 유교경전을 익혔 듯, 고대 그리스 이후 유럽에서는 7종 자유학예가 그 역할을 했다. 때문에 각 학문마다 급이 생겼고, 7종 자유학예에 속하지 못한 학문은 단연 그 중요성이나 가치에서 못한 취급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미술에 대한 박한 평가는 당연지사다. 때문에 많은 미술가들은 미술이 '7종 자유학예'에 속한 '학문'과 다를바 없음을 주장하며, 그 학문적 지위를 격상시키려 노력했다.첸니니가 미술의 창작성을 '시 창작'과 같은 것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원근법, 명암 등 미술의 기법을 과학적 특성과 같은 것으로 주창했던 것 처럼 말이다. 덕분에 르네상스 이 후, 미술은 그 특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학문'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관련 학문의 출연도 가능케했는데, '7종 자유학예' - 그들만의 리그에 속하기 위한 미술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 바로 '미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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