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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Apr 26. 2020

심리상담을 받다

(1) 아름다운 정상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 내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내를 받고, 간단한 정보를 작성했다. 신상정보와 가족관계, 평소 교우관계를 비롯하여, 평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럴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상담을 받고 싶은지, 상담 후 무엇이 바뀌기를 원하는지 등 여러 질문에 성심성의껏 솔직하게 가감없이 작성했다. 이번이야 말로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오던 마음의 불안과 부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내 삶을 내가 놓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용기가 있지는 않지만, 마음만큼은)


상담실로 향했다. 온화한 성품의 상담선생님은 차분히 나를 안심시키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끄셨다. 가족관계부터. 언제부터 이런 감정이 시작되었느지.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가기 위해 아주 사소한 느낌과 일들까지도 끄집어내주셨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면, '이런' '저런' '정말 힘들었겠군요' 등 위로 하는 말을 반복하셨다. 여러번 친구 등 다른 사람과 그때 이야기를 하면 (아주 상세히 나눈것은 아니어도) 열에 아홉은 '다 그래' '뭐 그런걸로 그러냐' '되게 징징거린다' '핑계일 뿐'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친구들 만나는 것도 힘들어지고. 그렇게 난 외롭게 홀로 이 기분에 사로잡혀 10년을 살아왔다.  


1. 내 자신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지 마세요.


50분의 상담동안 20분은 넘게 운 것 같다. 불안과 우울이 시작된 2008년부터. 나의 인생을 되짚어 보시던 상담선생님은 '우울증에 걸릴만 했네요.' 라며 위로하셨다. 이미 2013년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도 먹었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몇년을 이게 인생이려니 하고 살아온 나였다. 버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선생님 말따라 '회피하고 살아왔을 뿐.'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내 마음이 보내는 시그널을 읽지 않고. 내 몸을 혹사시키고 다그치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는 거부해 왔다. 한마디로 '쉬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셨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과 대화가 안되니 매번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게 된 것이라고. 


2. 능력과 실패는 별개에요.


몇번 내 삶에도 반등이라는게 있었다. 이번엔 되겠지, 이번엔 정말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겠지. 그러나 사기를 맞아 사업에 실패했다. 소송까지 가며 2년을 고통속에서 살았다. 사람을 믿었을 뿐인데, 나는 배신 당했다.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은 낮아졌다. 남들은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는데 나만 뒤쳐진것 같아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 자신에 대한 믿음도 깨지고, 나는 순진하고 바보같은 내가 더욱 더 싫었다. 그때였다. 


"실패는 우연히 나쁜 놈을 만나서 그렇게 된 것 일뿐. 능력은 변함이 없어요.
능력과 실패는 별개니까 둘을 같이 생각하지 마세요."   



3. 자기비하가 너무 심하세요


대화를 지속하다보니 내가 자기 비하섞인 말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 능력이 좋은게 아닌데...' '원래를 잘 못하지만...' 등등. 결과만 봤을 때는 잘 해낸 것으로 보이지만 내가 자신이 그것을 내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남들 눈에는 잘하고, 에너지 넘치고, 활발해 보이지만 사실 나는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보여지는 것과 내 모습 사이에서 간격이 너무 크다고. 무엇보다 보여지는 것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내 자신을 더욱 더 비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런 날 진짜 어찌해야할꼬? 


4. 엄마를 투영하고 있네요.


자식의 모습은 부모님을 투영한다고 한다. 나는 엄마를 투영하고 있다. 나보다 남을 더 신경쓰고, 헌신하고 기여하고, 힘들다면서 남들 부탁 거절못하고 다 들어주고 자기는 힘들어서 암을 비롯해 온갖 병을 달고 살고. 사실 내 성격이나 성향이 엄마를 닮은 것은 알고있다. 정말 미치겠는건 그런 엄마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거절못해 업무에 허덕이다 체력이 안되 쓰러지기를 반복한 적이 있었다. 사기 또한 어쩌면 거절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일이기도 하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은데 그게 또 엄마의 모습이다. 우린 어찌 해야 하나요?


5.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아요.


자기비하 만큼 내가 많이 쓰는 말이 '재미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안맞아서' 이런 말들이었다. 내가 내 삶을 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것들이라고 한다. '재미'와 '가치관' 그러다 30대 중후반이 되어 현실에 더 치중한 삶을 살다보니 간격이 커지고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힘들어 하는 것이다. 나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래서! 대체 어떻게! 거기다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데,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하는 일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서로 맞지 않아 더 어렵고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요, 저 이제 어쩌죠? 


"제가 이러는 게 정상인건지 비정상인건지 진짜 모르겠어요." 라고 하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정상이에요. 정상인데, 뭐랄까 되게 아름다운 정상"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난 너무 이상적인 것 같다. 


상담을 통해 해답을 전부 찾지 못할 것 이라는 것을 안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해답을 제시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의 이러한 마음 상태의 근원을 알고싶다. 그래야 이겨내든 해결하든 뭐든 하지.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선생님도 앞으로의 상담을 통해서 차근히 알아가보자고 하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셈이다.


 Plus! 사실 이 이야기들은 전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나눴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몇가지 사건이 더 추가되었을 뿐. 진짜 상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트라우마 이야기는 사실 시작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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