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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May 04. 2020

심리상담을 받다

2. 지독한 외로움

두 번째 상담 날이 다가왔다.

첫 날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상담센터를 찾았다.

작성한 심리상담 테스트지를 챙겨갔다. 이미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지만, 원본을 챙겨오라 했기에.

 

먼저, 테스트 결과에 대해 상담을 나눴다.

사실 테스트를 갖고 더 상담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할 말이 많아 다 토해내느라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세 번째 상담날을 기대해 본다.

어쨌든, 테스트에 대한 총평은 


우울이 무척 심하네요. 이 정도면 사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해요.
에너지가 없었을 텐데, 용케 버텨왔네요. 


우울감을 처음 인지했을 때, 잠시 병원에 가 약을 먹긴 했지만 어쩐지 그때만 해도 이렇게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곧 약을 끊었고, 이것저것 하면서 이 시간을 버텨왔다. 생각 안하면 괜찮을 것라고. 다들 그렇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지만 사실 아니었다. 내 안의 나는 아니라고 힘들다고 온몸으로 발악을 하는데, 나는 무시했다. 어떻게든 살면 다 될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니었다.


1. 약함에 대하여


나는 약하다. 거절하지 못하고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같은 일들이 -트라우마가 되었음에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반복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소위말해 노는 애들의 봉이 되었다. 기억은 없다. 어떻게 내가 그들과 놀게 되었는지. 그러나 느낌만은 남아있다. 그들과 어울려 하는 행동들이 나쁜 짓이었음을. 그래도 그들이 내게 나쁜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물건이나 금품을 '빌려달라'는 말로 가져가버렸고, 나는 몇년을 그들에게 여러 물건을 빼앗겼다. 거절하고 싶었다.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절하면 그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두려워 못했다.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들 중 대장격인 아이가 이사를 간 후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2. 말할 수 없는 트라우마


성적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나는 너무 어렸다. 그 사람이 잘해주니까 예쁨 받는거라 생각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곧 그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웠고 무서웠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후 이 사건이 공론화 되었고, 그 사람은 퇴출당했다. 그렇게 사건은 끝이 났다. 적어도,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게되었을 때 알았다. 그 자연스러운 일이 내게는 불가능했기에, 나는 알아차렸다.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의 온몸이 거부했다. 비록 나는 그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가 내게 어떻게 했는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 심지어 그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 나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성 관계'를 생각만 해도 더럽고 역겹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연애를 멀리하기 되었다. 친구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않으려 나를 다스렸고, 때문에 사람을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직 공부와 일에 매달렸다. 실제로 공부를 하고 일에 전념할때는 정말 괜찮았다. 떠올리지 않았기에 아무 느낌이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이 두 사건 때문에 내게 초등학교 기억이 거의 없다. 담임 선생님이며 반 친구들 이름 하나도 기억에 없다. 소풍을 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저 특정한 학년에 대한 느낌만 남아있다. 이것을 '회피'라고 한다. 트라우마가 된 일들을 기억에서 지워내고 떠올리지 않으려 계속 일을 만들어내고 나를 쉬지 않게 했다. 약하고 약해서. 거절하지 못해서 거부하지 못해 벌어진 일들이 만들어낸 트라우마를 나는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다. 이제는 마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사실 아직도 두렵다.


3. 착한 멍청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반복된다. 거절하지 못해, 거부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이. 거절하지 못해 나를 괴롭힌 친구들에게 끌려다녔고, 거절하지 못해 나의 몸에 상채기를 냈으며, 거절하지 못해 사기도 당했다. 다른 사건들이지만 사실 같은 일의 연속이다. 내가 사람을 너무 믿는 다는 것. 그러나 사실 내가 아무나 믿는 것은 아니다.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는 말을 들을 만큼 겉으로는 잘 어울리지만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벽이 있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트라우마로 내게 사람을 사귀는데 매우 신중하고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번 그 벽이 무너지만 걷잡을 수가 없다. 너무 믿고 의지해버려서 이 사람이 흑심을 품고 내게 오는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나를 위해 다가오는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4. 외롭고 또 외롭다 


왜 이런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왜 나는 날 잘해주는 사람을 잘 믿을까? 이유는 내가 외롭기 때문이다.


되게 외롭네요.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요. 


고된 시집살이를 마치 무용담 처럼 늘어놓는 엄마. 이혼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쳤는데, 애가 생겨서(나) 할 수 없이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엄마. 둘째도 셋째도 딸이라서 쳐다도 보러 오지 않았다는 아빠. 이름도 성의 없이 지어놓고.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번 수백번도 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그러면서 나는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를 자랑스럽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거다. 그 '죄책감'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그래서 모범생이 되었고, 칭찬받는 일에 예민해져서 칭찬받으면 더 열을 내서 열심히 했다. '노'라고 말하지 못하고, 더 잘하고 잘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칭찬에 약한 나. 그것이 모든 것의 원흉이다. 부모님에게서 나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혹은 사랑을 표현받지 못했다.) 내가 부모님께 의미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건 오직 부모님이 다른사람에게 날 자랑할 때 뿐이다. 그러다보니 칭찬해 예민해졌고, 나를 좋게 봐주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에게 속도 없이 내 전부를 주고 나는 계속 뒷통수를 맞게 되었다. 그들은 내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나를 해코지 했는데, 나는 매번 그걸 너무도 늦게 알아차린다.  


벗어 나세요. 이제 벗어 날 수 있어요.


이 한마디에 울컥했다. 자꾸만 바보같이 당하는 나. 내 갈길을 못찾겠는 나. 어떻게 무엇을하며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조차 못찾겠는 나.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운 나. 사람조차 쉽게 사귈 수 없는 나.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답답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있다는 이 한마디가 너무 큰 힘이 되었다. 당장은 벗어날 수 없지만, 어쩐지 이 상담이 끝나는 날이면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것 같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이 지긋지긋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아이를 가진 부모님이 있다면, 부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많이 많이 표현해 주세요. 칭찬해주는 말도 응원해 주는 말도 물론 다 좋겠지만, 사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아이를 살리는 말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면 누구의 칭찬도 응원도 다 찰나일 뿐 이에요. 마음이 강한 아이가 누구보다 강한 아이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강해보여도 사랑이 없으면 사실은 가장 약해요. 강한 척 하는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혹시라도 아이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거나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아이에게 '너가 조심했어야지 '라는 말이나 표정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말만 듣고 끝내지 마시고, "어떤 X이 그런거야? 괜찮아. 엄마가(아빠가) 가서 혼내줄게." 라는 말도 해주시고, 일이 마무리 된 다음에도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 해 주세요. 아이가 절대 "내 잘못이야. 내가 바보라서 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가해자가 나쁜 거잖아요. 피해를 입은 아이가 죄책감에 힘든 삶을 살지 않도록 부디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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