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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Jun 14. 2020

심리상담을 받다

4. 착한 사람 콤플렉스

처음 결제한 6번의 모든 상담이 지난주에 끝이 났다. 사실, 연장해서 최소 5번이라도 더 받아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 당분간은 보류다. 언젠가 또 기회가 오면 못다한 상담을 해보기로 하고.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남은 상담일지를 시작한다. 


지난 5월 22일에 진행된 4번째 상담 내용은 이렇다.


1. 화를 몰라

어렸을 적, 노는 애들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에 거절못하고, 정당한 휴식에 욕을 먹었을 때도

사기를 당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했을 때도

난, 모든것을 나의 탓, 나의 잘못으로 돌리고 나를 괴롭힌 그들에게 정당하게 화를 내지 못했다.


화를 모른다.

화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느끼지를 못한다.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에 나는 눈물로 그것이 싫다고 표현할 뿐. 결국 수용하고 나를 갉아 먹는다.

내 안에 화가 쌓이고 쌓여, 내 몸과 마음을 산산조각 낼때까지 모든 것을 감내한다.

싫다고 하면 인생이 망하나? 안한다고 하면 누가 죽이나?

나는 왜 무엇때문에 "No"라고 말하는 것을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왜, 싫으면 싫다 말을 못하고 모든 것 - 부당한 것까지 모두 떠안고 자해하며 내 자신을 괴롭힐까?

정당하게 화를 내야 하는 대상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내 자신을 학대하고 갉아먹는 것일까?


2. 착한 사람 콤플렉스?

스스로 나약하고 볼품없고, 미약한 존재라 생각하는 나는, 그 때문에 멕아리 없는 내 이름도 싫고. 

모른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모른다고 알려달라고 하면 될 것을. 약해보일까봐 무시당할까봐 끝까지 혼자 해내고야 만다. 최선을 다해 내 몸 부서져라 일에 몰두한다. 


거절을 못하는 나

그러면서도 부탁도 알려달라고도 하지 못하는 나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말하지 못하는 나


결국,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나는 거절도 부탁도 못한 채 모든 일을 떠맡고. 그들은 내가 거절도 안하고 주는 대로 하고, 심지어 일도 잘한다고 날 부려먹고. 나는 지쳐 쓰러질때까지 일을 하고. 


가끔 내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다.

싫다면 싫다. 아니면 아니다. 못하면 못한다 왜 말을 못하고 모든 것을 떠 안은 채 나만 고생하는 건데?


이것은 엄마의 영향이 크다. 엄마도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으니. 가장 엄마를 많이 투영하고 있는 나라서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은데. 난 또 그렇게 살고 있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3. 경직된 삶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참 걱정이 많다. 항상 불안하다. 안해도 될 생각, 미리 걱정할 거 없는 일들까지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안그래도 거절못해 쌓여있는 일도 많은데, 잠시라도 쉬면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스믈스믈 내 머리를 꽉 채워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잠시도 쉬지를 못한다. 멍~하니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다. (그나마 요즘에는 나아졌지만.....)


그러다보니 쉬는 것 조차 계획하에 한다. 계획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강박조차 있어서. 한마디로 참 피곤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이 항상 경직되어있어 피곤하고 힘들다. 엄청 강한 추진력에 그것을 실행에 옮겨 이뤄내는 능력은 강하나,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결국 내 몸은 지쳐 시들어버릴 지 모른다. 여유가 필요하다. (나도 그러고 싶다.)




 이런 문제점들을 갖게 된 원인을 모두 알게된 것은 아니지만, 가정환경 탓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성향과 거의 비슷한 엄마. 거절못하고, 내 몸 부서져라 일하고. 쉴 줄 모르는 모습 모두 엄마와 닮은 부분이다. 닮았다고 해서 내가 엄마처럼 살 필요는 없다. 엄마는 엄마대로 그 성향을 안고 살아왔지만, 나는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엄마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제 난 어찌해야 하나?


하나.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정말 특이하게도 호주에서 살때는 거절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영어로 소통을 할 때는 거절하고 부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 말로는 우리말로 할때보다 외국어로 소통할 때 더욱 자신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러한 경우 중 한 사람이다. 어쨌든, 외국어로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게 가능하니, 영어를 하는 것 처럼 생각하고 거절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는, 내가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니 내 의견을 말하거나 주장해야 할 때 (또는 화를 내고자 할 떄) 글로 쓰고 나서 말해 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직, 화를 내거나 거절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언젠가 꼭 해봐야지!


둘. 나쁜 년이 되도 괜찮다


모르는 것을 들키면 내가 약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몰라도 아는 척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약한 것.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내 것을 뺏기지 않고, 내 것을 지키고, 나를 갉아먹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쁜 년이 되어도 좋다. 나쁜 년이 나쁜 년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주장이 강하면 '나쁜 년'처럼 인식하지만 (특히 나의 가정환경에서는) 그것은 자기를 지키는 지키는 일이니 그정도의 나쁜 년은 되어도 좋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 해 주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서.


셋. 잘 쉬면서 인생을 넓게, 멀리 볼 것


나는 모든 것이 속도적이다. 말도 빠르고, 계획한 일을 옮길 때도 일단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본다. 책을 읽을 때도 빠르게 읽고, 다시 읽으며 내용을 곱씹는 편이고. 공부할 때도 벼락치기는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시험보기 2주전이면 거의 모든 공부를 끝내놓은 상태에서 점검하고 복습하는 성향이었다. (단,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한다는 것!) 나는 감정-마음보다 머리-이성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빠지면 너무 몰두하다가 시야가 좁아지는 단점이 있다.


계획하에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성향때문에 쉬는 것도 계획의 일부로 본다. 게다가 계획을 지키는 것에 너무 강박증세가 있어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계획과 다른 결말을 만나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 매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실패를 통해 경험을 얻고, 지혜와 방법을 얻는 것. 인생은 절대 성공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 그러니 실패라 생각하지도 말고, 실패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반드시 얻는 것이 있으니 계속 나아가기만 하라! 계속 나아가라는 말이 와 닿았다.


또한, 잘 쉴 것. 이제는 머리보다 마음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과 대화를 많이 할 것을 주문받았다. 편안히 호흡하며, 천천히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인생을 멀리, 넓게 보면 지금처럼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도 차츰 사라질 것이다. 


더이상 거창한 무언가를 하려고 계획을 세우지 말 것!

작고 짧은 계획으로 대체해서 충분히 쉬는 시간을 확보할 것! 

그리고

화를 낼 것!


건강하게 사는 삶을 이제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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