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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Jun 14. 2020

심리상담을 받다

5. 꿈을 꾸고 있는 슬픈 얼굴

지난 6월 1일에 진행되었던 다섯번째 상담은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에 했던 이야기들의 복습과도 같았는데. 다만, 다섯번째 상담을 통해서 나는 위로와 용기를 많이 얻었다. 내가 은연중에 알고 있던 것인데,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것. 나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내 상황에서는 정상일 수도 있다는 위안이 오랫동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가시처럼 박혀있던 상처를 어루만져 준 느낌이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


부모가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나를 싫어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상황이 부모를 너무 힘들고 지치게 해서, 아이들은 충분히 부모와 교류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앉은뱅이 시할머니, 90이 넘으신 시할아버지, 중풍걸린 시아버지, 위암걸린 시어머니, 식물인간 시누이. 이들을 모두 모시며 넓은 밭 농사를 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해 온 엄마다. 아들 아들하는 집안이라 나를 비롯해 내리 딸만 낳다가 막내 아들을 낳았다. 일은 일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엄마는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그렇다고 아빠가 엄마를 감싸안고 엄마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으면 덜 했을 것을. 아빠 또한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딸들의 이름은 정말 성의가 없다. 아들 이름은 돌림자에 신경써서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딸들 이름은 그냥 그냥 지었다. 딱히 이유가 있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다. 그날 날씨에, 비슷한 라임 맞추느라 끼워넣은 느낌이다. 사실, 이름 자체는 이쁘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때부터 이름이 너무 싫었다. 멕아리 없는 것도 그런데, 의미없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너무 싫었다. 그리하여 올해 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엄마는 그 시절 효부상을 탔던 사람이다. 효부상을 탈 정도면 말 다했지 않나. 시조부모, 시부모 (심지어 지금은 시누이에 시아주버님까지) 수발 잘 들었다고 주는 상이라니. 젠장, 직작에 엄마는 상패며 사진이며 다 버렸다지만 노비 낙인 만큼이나 지워지지 않는 (나에게, 엄마에게도) 흑역사같은 것이다. 그런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먼저였다. 한창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은 항상 어른, 또는 손님들에 밀렸다. 우리와의 약속은 다른 시댁 식구들이나 손님들과 급히 일이 생기면 이유도 없이 그냥 밀린다. 지금도 그렇다. 엄마도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겠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엄마, 밭일로 바쁜 아빠. 나와 동생들은 건강하게 먹을 거 먹고 잘 자랐지만 허전함을 느낀다. 선생님말따라, 부모가 젖은 주었지만 꿀은 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거기다 예민하고 모든 것을 잘 기억하는 성격이라, 엄마의 한탄과 하소연을 백만번은 더 듣고 자라왔다. 이혼하고 싶었는데 못했다느니. 힘들었다느니. 아들 낳기 전 모든 출산을 영웅담처럼 얘기하며 둘째 동생 태어났을 때 딸이라고 보러 오지도 않았다는 아빠이야기 등. 행복하고 즐거웠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매번 이래서 힘들었고 저래서 싫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느샌가 내가 태어나 엄마의 인생을 발목잡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하는 마음,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강박의 모든 원인이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너무 많은 일과 어른 모시느라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갖고있게 되었는데, 나는 그 중 불안과 우울을 담당하게 되었다. (동생들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나는 내가 무엇이 사랑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것, 사랑받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라고 나는 선생님께 되물었다. 그 외에도 (전부터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감정을 잘 모른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며 대체 '행복'이 뭐야? 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어.'라고 자주 말하던 나였다. 왜 나는 이렇게 감정에 서툴까? 선생님께서 말하시길, 내가 보고 자란 대부분이 부모의 짜증과 피로, 힘듦, 지친 모습이라서 감정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감정을 온전히 부모와 나눠본 적이 거의 없기에, 감정을 모르는 것이라고. 


마음은 계속 말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내 머리가  이 신호를 잘 못읽어서 눈물부터 나온다고 한다. 눈물이 먼저 터져나오는 것은 감정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눈물이 나면 그 감정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처음 상담을 받게 된 계기 중 하나였던, "나는 왜 맨날 불안할까? 나는 왜 자신감이 없을까?"의 답을 이 날 상담에서 얻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온전한 해답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한 나의 심리상태, 지금의 나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력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자, 불안의 원인은 알겠고. 그럼 어떻게 해야 불안이 좀 가실까? 이제와서 어린시절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인데. 과연 상담의 끝에서 나는 조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첫 상담 날, 내게 '아름다운 정상'이라고 말하신 선생님은 이 날, 눈물 훔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셨다. 

얼굴은 꿈을 꾸고 있는 얼굴인데, 슬퍼요. 슬픈 얼굴이에요.


이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일까? 물어본다는 것을 못 불어보고 상담을 마쳤다. 다음 상담을 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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