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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Dec 02. 2020

TMI 대방출 _ 1일차

나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11월의 소소한 일기 쓰기 프로젝트를 끝냈다. 12월에도 무언가 흥미롭고 재밌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생각 해 봤는데, 미술관련 글을 쓰려다 그것은 글 하나 쓸 때마다 시간이 오래걸려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12월에는 시험대비로 바쁘기도 하고, 해야 할 다른 일들도 산더미라서, 시간이 오래걸리는 글 쓰기는 부담스러워 일단 패스. 대신, 이번에는 2020년도 마무리 할 겸, 내 자신에 대해서도 정리도 해 볼 겸 -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 나 자신에 대한 TMI를 써보며 12월과 올 한 해를 마무리 해보려 한다. 


첫 번째, TMI. 나는 두마리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2년 3개월차 집사다. 한 마리는 엄마 고양이, 다른 한마리는 딸 고양이다. 엄마 고양이는 '어머님', 딸 고양이는 '따님'이라고도 부른다. 아기 고양이 시절을 지나, 완전한 성묘가 된 따님인지라, 어머님과 따님은 서로 동거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개월이 다 되도록 젖먹던 아기냥이는 커서 엄마랑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정말 배은망덕한 고양이가 아닐 수 없다. 

엄마 고양이(앞) 딸 고양이(뒤)

내가 나의 고양이를 만난 건, 2년전, 2018년 8월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고양이 문외한이었다.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특히, 길고양이는 길고양이고, 집고양이는 집고양이라고만 생각했다. 현재 어머님 고양이는 동생이 가끔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다. 이미 두 고양이의 집사였던 동생은 동네 고양이들을 만나면 자주 밥을 챙겨 주었는데, 그 중 한 마리였다. 나도 간혹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두어번 마주친 적이 있던 아이였는데, 이때 이미 엄마 고양이는 임신한 상태였다. 지 새끼들을 살리려 기를 쓰고 동생 앞길을 막고 밥을 내놓으라고 사정하던 아이였다. 그저 안쓰러웠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길고양이 시절의 어머님 (임신 중)

얼마 후, 동생이 엄마 고양이를 구조했다며 주택인 본가 - 내가 살던 집으로 고양이를 데려왔다. 시비붙은 아저씨가 고양이를 죽인다고 협박하는 탓에 겨우 잡아 온 것이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 심지어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아이. 그날 밤 아이는 탈출을 시도한 듯 한데, 막상 나가보니 여기가 제일 안전했는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 뒤, 4마리의 예쁜 아가들을 낳았다. 


아가들을 돌보며, 나는 어느새 고양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정말 여건만 되면 모두 키우고 싶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생활하던 나는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후,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아이들을 확인하고,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놀아주고. 매일 고양이를 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를 정주행하고, 각종 고양이 서적이며 유투브 영상을 챙겨보니 열심히 고양이에 대해 공부도 했다. 세상 모든 공부가 마음가는 곳에 있다면 1등을 하고도 남았을텐데. 아쉽다.

엄마 고양이 위에서 항상 잠을 자던 막내 딸 고양이(지금은....)

2달 후, 세 마리는 좋은 곳에 분양보내고. 엄마 고양이와 막내 고양이를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아이낳고 나면 다시 내 보낼 생각이었는데, 깨끗한 하얀 털을 뽐내며 편안한 얼굴로 잠을 청하는 엄마 고양이를 보며 춥고 배고픈 길바닥으로 다시 내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내 고양이는 생후 1개월도 안되어서 허피스에 걸리는 바람에, 손바닥만큼 작은 아이를 손수 약먹이고 돌보았더니 그새 정이 들어 다른 곳에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여지껏 이 두마리 고양이들과 사는 중이다.  


내 방은 이제 고양이 방이 되었다. 내가 내 공간이라 할 곳은 책상과 침대 뿐. 그마저도 나눠 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매번 내것이 아닌 아이들의 것을 검색한다. 이러다 나는 서서 자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 고양이는 처음 왔을 때 부터 구내염이 있었다. 그간 발치도 하고, 약도 먹었지만 만성이라 계속 약을 먹으며 관리해 줘야한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이거나, 또는 입맛에 맞는 주식캔을 대령해 손수 먹여줘야한다. 이렇게 2년 가까이를 지냈다. 그러나 피곤하지 않다. 그저 오랫동안 내 곁에서 편안히 살다가 고양이 별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슬며시 다가와 시크하게 내 옆에 기대어 잠들 때 마다 너무 사랑스럽다. 이 행복을 오래 누리고 싶다.

편안해 보이시는 어머님 _ 만수무강하세요

따님은 아가때 그렇게 아파서 나약한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페이크였다(?). 이렇게 건강할 수가 없으며, 이렇게 4가지가 없을 수가 없다. 금이야 옥이야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하며 키웠더니, 엄마 고양이 알기를 또 집사 알기를 개 똥으로 안다. 성질머리가 이렇게 더러울 수 없다. 하지만 너무 귀엽다. 우리한테는 센척하면서 정작 우리 외 모든 사람, 동물은 다 무서워한다. 작은 소리만 나도 이불속으로 숨어버리는 똥고양이. 방구석 여포가 따로없다. 사냥놀이에도 항상 진심이라 온몸으로 놀아줘야 하지만 노는 것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난다. 내 최고의 엔돌핀이다.

오드아이가 매력적인 똥고양이 따님

당시엔, 동생이 데려온 아이니, 새끼를 낳고 아기들을 분양시키고 나면 동생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해 가을. 두 달은 기적과도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모든 평화가 깨졌던 그 때.  아마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난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눈을 떠도 감아도 절망뿐이던 내게 아이들은 웃음이 되고, 빛이 되어 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고양이들을 구원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나의 구원이었다. 

그렇게 매일을 감사하며 고양이 수발을 드는 나는 '고양이 집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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