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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Jan 02. 2021

3.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가까워 질 수 없는 둘의 사이 - 99점

서양 철학의 시발점이자 전성기가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시대였지만, 애석하게도 미술이나 미술사학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 미술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활동은 존재했지만, 미술 활동 - 즉, 미술품을 제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다. 미술가는 철학자나 수사가 보다 한 참 아래인 육체노동자 정도로만 생각되었고, 미술 제작은 미술가의 능력이 아니라 신의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결과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미술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관심이나 미술사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을리야 천부당 만부당 한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美) -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는 존재했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지만, 미술의 가치에 대해 관심을 표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 중 상극의 가치관을 가진,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있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위 그림은 르네상스 3개 거장 중 한명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그림의 제목답게 학당안에는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유명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 정중앙에 위치한 두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둘은 전혀 다른 이념을 가진 극과 극의 철학자들인데, 그 차이는 그림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형이상학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자 플라톤의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현세적이고 경험적인 이론을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 - 둘의 이념 차이마저 그림 속 읽을 재미거리다.


미(美)와 미술에 대한 둘의 관점 또한 정반대였다.


플라톤


플라톤은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이자, 절대 선(善), 절대 미(美)라는 것을 '이데아(idea)'라 불렀는데, 이것은 형이상학적 가치  삶의 목적이자 추구 대상, 존재 가치의 이유가 되는 등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것은 또한 매우 정적인 가치로, 오직 이성적 사고와 명상 등 정신적인 활동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플라톤은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이데아'를 주창했다.  

  

그렇다면, 미술에서의 '이데아'는 어땠을까? 일단, 다시한번 상기해야 할 점은 당시 미술 학문으로도 취급받지 못했던 점, 미술가들의 인식 또한 노동자 정도 였다는 점, 때문에 미술에 대해 논할 가치도 그다지 없었다는 점이다. 한 때 이집트 미술을 경외할정도로 미술에 해박했던 플라톤이었지만, 그 역시 당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는 더욱, 미술을 인간에 무해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에게 미술이란 절대적 아름다움(美)인 '이데아'를 감히 엄두조차 못 낼 한 낱 육체노동이었다.


미술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침대 이론'이다. 플라톤은 잠을 잘 때 누워서 잘 수 있도록 설계된 직사각형의 넓은 판과 매트로 묘사할 수 있는 '침대라는 개념'을 '이데아'라 정하고, 그 개념에 따라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진 침대'를 '자연'이라 비유했다. 그리고 '침대'라는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물체 침대'를 보고 그린 '침대 그림'을 (미술)작품이라 보았다.


침대라는 개념 - 이데아 - 절대적 아름다움

침대라는 물체 - 자연 - 모방작

침대 그림 - 미술 - 모방작의 모방작


종합해보자면, 머릿속에 생각으로만 가능한 '침대라는 개념'만이 '이데아'로써 완전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된다. 눈 앞에 그것을 아무리 완벽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낸다고 한 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방작일 뿐 이며, 그 모방작을 또 모방한 그림 속 침대에서는 당연히 온전한 아름다움을 찾기 어렵다. 즉, 그 어떤 시각적인 물체도 미술 작품도 머릿속에 존재하는 완전한 아름다움(이데아)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미술은 모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미술가는 이데아를 모방하는 모방자 일 뿐이다.


단, 비록 모방의 기술만을 가진 미술가도 그 속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이데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데아'를 가장 잘 구현한 '자연'을 심도있게 관찰해야한다. 자연은 '이데아'를 바로 재현한 - 신의 창작물로 가장 태초적인 형태이기에, 미술가는 명상과 사유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속에 내제된 절대적인 진리, 아름다움을 잘 포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플라톤이 생각한 미술, 미술가의 역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아름다움(美)은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에 미술가의 정신 속에 이미 아름다움(美)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미술가의 경험과 인지의 산물로 했다. 이는 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미술품 제작을 신의 영감을 받은 행위로 인식했던 것과 다르다. 또한 자연 속에 절대적 아름다움이 숨겨져있다는 플라톤의 이론과도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미술의 아름다움을 구별했고, 적어도 미술 제작의 공을 미술가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 역시 당대 그리스인의 통념적인 생각과 마찬가지로 미술을 모방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모방의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 색체와 드로잉을 통한 시각적 외양을 모방한 것

둘째, 운문, 노래, 춤 등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는 것


이 중, 아리스토텔레스가 애착을 보인 것은 두 번째 모방기술이다. 특히 시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는데, 그는 비극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을 강조했다. 작가가 정확하고 질서있게 현실을 모방하면 관객은 주인공이나 작품의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이러한 정서적 고통이나 연민의 공유가 '쾌락'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쾌락을 가리켜 '고유한 쾌'라고 이름짓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하고 질서있는 - 잘 된 모방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강조하며, 모방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미술에서의 모방 기술도 한 층 높은 단계로 격상시켰다. 때문에 이전보다 미세하게나마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여전히 미술가의 처지가 '장인'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관념론의 대가 플라톤과 경험론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반된 철학은 훗날 독일 관념론과 영국 경험론 두 분파로 구분되는 현대 미학에까지 지속되며 그 영향력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두 철학자 모두에게 미(美)에 대한 관심은 콩알 만큼 매우 미비한 것이었다. 그 둘은 그저 미술의 영역에서 미(美)를 언급했을 뿐, 그것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비례와 균형 등 기교적 미술 규범은 있었어도,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를 전혀 갖추진 못했던 당시 미술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미술 작품을 좋아하긴 하나 미술가를 멸시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말따라 미술은 오랫동안 딱 이정도의 소비품 대상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하니 미(美)에 대한 개념이나 미술에 대한 가치, 미술가의 역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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