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미술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줄곧 '모방의 행위'로 인식되었고, 그만큼 미술가의 평가도 야박했다. 시대가 흘러도 미술품에 대한 수요나 관심은 줄지 않았고, 지배계층은 더욱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미술품에 애정을 쏟았지만 그렇다고 미술 자체와 미술가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간혹 화가나 조각가의 일대기 또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서술하는 소수의 사람들아 존재했지만, 미술에 대한 오랜 편견을 깨뜨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한 시절이 그렇게 흘러가려고 하는 때, 등장한 한 사람 - '플로티누스(205-270)'가 있다. 그는 이전 선배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름다움(美)'을 인식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시대는 이미 고대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가 할 수 있는 고전기도 한참 흘려보낸 헬레니즘 시대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프리카부터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 한 후, 그리스와 동양의 문화가 만난 '헬레니즘 문화'가 창궐하던 시기 말이다. 이 시기 미술은 조화와 균형, 비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전기를 벗어나, 현실적이고 극적인 - 사뭇 과장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목표하는 미술의 기준이 달라졌으니, 미술에 담긴 '아름다움(美)'의 대한 생각 또한 달라지는 건 당연지사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1511)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中 일부
플로티누스는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그 형상대로 빚어졌기에, 본능적으로 아름다움(美)을 추구할 수 있고, 이성이라는 로고스를 통해 감각적으로 아름다움(美)의 형상을 재현 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플로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자답게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계승하여 '일자(The One)'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그에 따르면 '일자'는 만물의 존재 근원이자 원인이다. 세상 모든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는 창조주로 플라톤의 '이데아'보다는 종교적 개념의 '신'과 비슷하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모습'을 뜻하는 말로, 근대적 개념에서 '관념'이란 용어로 대체된다. '이데아'는 세상 모든 만물의 원형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지만, 이성적으로 이해되고 사고되는 인식의 최고 단계이기에 플로티누스의 '일자'가 내포한 '창조 능력'과는 다르다.
플로티누스는 '일자'라는 개념 아래 '누스(Nous)'의 단계를 두었다. '누스'란 - 마치 종교의 절대 신처럼 -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일자'를 대신 해 다양한 존재에게 통일성을 부여하는 '정신, 지성,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영혼(Psyche)'은 '일자'와 '누스'가 만들어낸 도구로, 물체나 대상을 실제로 존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일자'의 창조 명령을 받은 '누스(정신)'가 어떤 특성의 물체를 만들지 생각해내면, 그것을 '영혼'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때, 플로티누스는 이렇게 창조된 만물은 자연적으로 그 안에 깃든 창조주인 '일자'를 선망하고 쫒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자(The Once) : 만물의 존재의 근거로써 창조주
누스(Nous) : 일자를 대신해 모든 존재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정신, 지성
영혼(Psyche) : 일자와 누스가 만들어 낸 도구로 물체나 대상을 실재하는 것
만물 : 일자의 감각을 모두 물려받아 본능적으로 일자를 쫒으며, 절대적 아름다움(美)을 동경하고 재현
플로티누스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일자'를 동경하듯 '절대적인 아름다움(美)'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만물의 하나로 절대적 아름다움(美)을 가진 '일자'가 '누스'와 '영혼'을 통해로 창조해 낸 것이다. 따라서 '일자'가 가진 '아름다움(美)'의 감각을 모두 물려받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美)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미술가는 '이성'이라는 로고스를 통해 감각적으로 아름다움(美)의 형상을 재현해 낼 수 있다. 자연의 모든 물체도, 미술가 본인도 아름다움(美)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 대상을 미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더이상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그 대상 자체에 내제된 절대적 아름다움(美)의 근원인 '일자'를 복구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개념은 플라톤 이 후 줄곧 미술은 절대적 아름다움(美)을 구현할 수도, 이루어낼 수도 없는 모방의 행위일 뿐이라는 오랜 통념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그 자체로 완전하고, 절대 불변하는 진리로 보고, 실제하는 모든 것을 '이데아'의 모사품으로 보았다. 때문에 미술가는 '이데아'의 모사품인 '자연'을 다시 모사하는 모방가일 뿐이고, 당연히 '이데아'의 절대적인 아름다움(美)에는 접근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플로티누스 시대에도 지속되었는데, 플로티누스는 '일자' 개념을 통해 '절대적인 것'과 '실제하는 것'이 연결된 것임 역설하며, '자연=모조품'으로 보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는 미술가 뿐 아니라 예술가의 행위가 '모방'이 아니라 '상상'을 통한 것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미술가를 모방가로 인식하고, 작품 제작 능력을 '신의 영감'을 받아 이루어낸 능력이라 인식했던 플라톤과 확연히 다르다. 한 예로 플로티누스는 "페이디아스는 그가 본 대로 제우스를 조각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조각한 것이다." 고 했다. 예술가의 능력을 '신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예술가 개인의 '상상 능력'으로 간주한 것이 고무적이다. 따라서 그 이후 예술가의 능력으로 '천재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놀랄일이 아니다.
콰아트르베르 드 쾡시가 상상한 페이디아스의 제우스 조각상 (1815)
페이디아스는 그가 본 대로 제우스를 조각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조각한 것이다.
플로티누스의 기발한 개념으로 미술과 미술가의 위치가 급 상승할 것 같았지만, 불행히도 이 후 유럽의 역사는 절대 신 중심의 중세시대로 흘러갔다. 절대 신 아래 인간의 개성은 묻히고, 모든 삶은 기독교적 가치 아래 통제되었다. 겨우 미술가의 '상상력'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제작 활동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뻔 했던 미술은 다시 긴 시간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 채 사회의 부속품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인식과 역할이 여전히 지지부진했기에, 미술의 가치나 미술사학에 대한 논의도 또한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름다움(美)에 대한 플로티누스의 관점은 여러면에서 종교적 철학과 맞닿아 있어, 중세 미술에서 아름다움(美)의 가치와 미술의 역할을 결정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플로티누스의 절대적 아름다움(美)을 도덕적 선(善)과 일치시키고, 절대적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과정을 신에게로 가는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플로티누스가 주창했던 -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아름다움(美)을 추구하고, 예술가들이 모방이 아닌 상상 능력으로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이 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천재 화가'라는 말이 등장케하는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