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브런치
2007년 여름, 요리 학교의 1학기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휴학을 한 후, 뜬금없이 뉴욕으로 떠나기로 계획을 짰다. 마음을 먹으면 후회하지 말자 라고 다짐을 하고 처음 했던 가장 큰 모험 중에 하나였는데,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었고, 기본적인 어학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던 계획이다. 내가 여행의 목적지를 뉴욕으로 잡은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당시 세계의 문화 중심이었고 세계의 모든 음식이 다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욕의 야경을 보고 싶은 그 마음과 더불어 전 세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그곳에서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진 그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었다.
뉴욕 생활은 평화로웠다. 퀸스 지역 YMCA에서 먼저 짐을 풀었다. 아침은 베이글과 사과로 소박한 식사를 했고 낮엔 어학원에서 공부를 한 후 저녁엔 교회를 통해 잠깐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리고 하루의 한 끼는 꼭 외식을 했었다. 대부분이 점심 시간대 먹을 수 있는 브런치 메뉴들이었는데 가난한 유학생에게 브런치 세트처럼 친절한 가격과 음식이 있다는 것은 그 메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브런치의 종류는 정말 다채롭고 황홀했다. 블루치즈를 넣은 오믈렛을 처음 먹어본 날 , 아스파라거스 퓌레로 만든 차가운 파스타, 덤플링 속 가득 터져 나오는 육즙, 차이나타운의 테이크 아웃 도시락 뷔페 , 타임스퀘어 근처 카페의 치즈 케이크, 110년 된 핸드 드립 커피숍, 센트럴파크 근처의 20cm 비프 샌드위치.. 나열해 보자면 끝도 없는 그 음식들은 내 레스토랑인 '트라토리아 오늘'과 지금의 ‘오스테리아 주연’ 속 음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하루하루를 보면 가난한 일상이었지만 전체를 보면 풍족하고 부족할 것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뉴욕을 돌아다니며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2008년 1월 겨울에 먹었던 '에그 베네딕트'라는 계란 요리이다. 해가 바뀌는 신년은 어느 나라나 똑같이 쉬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뉴욕도 다를 바가 없다. 혼자 새해를 지내고 쓸쓸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맛있는 점심을 사 먹기로 다짐하고 옷을 든든히 껴입고 외출을 했다.
뉴욕의 겨울은 추웠다. 길게 늘어진 맨해튼의 거리를 걸으며 한결 같이 닫아 있는 레스토랑들을 지나치며 두어 시간 정도 걷다 슬슬 지쳐 포기하고 집에 가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까 생각이 들 때쯤, 격자 창문의 새해를 맞이라는 환영 글과 함께 문이 열려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브런치를 판매하는 곳이었고, 난 짧은 영어로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을 하고는 얼어있는 손을 호호 불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양인이 혼자 맞이하는 새해가 안쓰러웠는지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식전 빵과 함께 따뜻한 수프를 건네주었다. 새해 선물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시크하게 돌아서는 그 모습이, 뉴욕 생활 6개월 만의 타인에게 받은 첫 호의였던 거 같다. 사실 수프는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아직 난 그 레스토랑의 홀로 앉아 보았던 창 밖 건너편 풍경과, 마음속까지 따뜻했던 수프가 머릿속에 선명히 기억된다.
노란 훌렌 다이즈 소스가 듬뿍 올려진 에그 베네딕트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감자는 에그 베네딕트 옆에서 푸짐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에그 베네딕트를 반숙의 계란을 반으로 잘라 흐르는 노른자를 훌렌 다이즈 소스에 버무려 빵, 베이컨에 충분히 적셔 먹으니 정말 노른자의 깊은 풍미와 소스의 부드러움 그리고 적셔진 빵에 베이컨 향까지, 평범한 재료들 속에서 독특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뉴욕 유학을 겪으며 배운 것 중 하나는, 상황에 맞는 음식들은, 삶의 추억과도 많이 연결이 된다라는 거다. 출국 전날 어머니가 끓여 주신 김치찌개의 그리움의 맛이라든지 유학생활 중 혼자서 먹는 한 끼의 외로움의 맛, 아주머니의 따뜻한 수프 한 접시의 배려의 맛 같이 말이다. 요리는 그 추억을 기억 속에서 꺼낼 수 있는 책갈피이며 기술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은 길지 않은 유학생활에서 얻은 정말 천금 같은 경험이었다.
에그 베네딕트는 잉글리시 머핀을 구워 반으로 자른 후 그 단면에 햄이나 베이컨, 훈제연어 등을 넣고 포치드 에그를 얹고 계란 노른자로 만든 훌렌 다이즈 소스를 뿌려 먹는 미국의 대표적인 브런치 요리이다. 계란 요리이다 보니 다른 재료들과도 궁합이 잘 맞고 그 자체로도 빵과 함께, 또는 샐러드와 먹으면 훌륭한 한 끼가 되기도 한다. 클래식 에그 베네딕트는 잉글리시 머핀, 캐나디안 베이컨, 수란, 훌렌다이즈 소스를 넣어 먹고 그 외에 응용한 비슷한 요리들이 많다. 예를 들어 에그 애틀랜틱은 캐나디안 베이컨 대신 훈제 연어를 넣은 것으로 에그 코펜하겐, 에그 로열, 에그 벤자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베이컨 대신 시금치가 듬뿍 들어간 에그 베네딕트는 에그 플로렌틴 이라고도 불린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에그 베네딕트에 아보카도를 듬뿍 올려 먹기도 했는데, 어떤 재료를 다양하게 얹어서 먹어도 훌렌 다이즈 소스와 노른자의 풍미가 더해진다면 맛도 두 배로 다양하게 느낄 수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에그 베네딕트는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는데, 이태원이나 서래 마을 등의 브런치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브런치라는 메뉴들 특성상 가격은 낮은 편은 아니다. 커피를 세트로 파는 곳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여유롭게 천천히 브런치 문화를 즐길 수가 있다.
#빼놓을 수 없는 훌렌다이즈 소스
에그 베네딕트의 화룡정점, 노란빛을 내는 소스가 있다. 바로 훌렌다이즈 소스이다. 소스 올랑데즈라고도 한다. 계란 노른자가 주가 되는 소스로 흔히 양식의 5대 모체 소스이다. 요즘에는 모체 소스라는 개념을 넘어 선 너무나도 다양한 소스들이 많아졌지만, 기본적으로 훌렌다이즈 소스는 다른 어떤 소스들 보다도 많이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훌 다이즈 소스는 에그 베네딕트 같은 계란 요리뿐만 아니라, 구운 생선이나 닭고기 같은 요리에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 소스를 얹고 살라만더나 토치로 불을 그을리면 노릇하게 갈색으로 익은 색감은 식욕을 절로 돋게 만들어 준다.
재료 : 계란 2알, 물 1.5L, 식초 30ml , 소금 1ts , 잉글리시 머핀 또는 식빵, 베이컨 또는 햄,
훌렌 다이즈 소스 재료 : 계란 노른자 1개, 화이트 와인 100ml, 양파 챱 10g, 파슬리 줄기, 레몬즙, 정제 버터 50ml 설탕, 소금 조금
훌렌다이즈 소스 만들기
-화이트 와인과 파슬리 줄기, 양파 챱 소금과 설탕을 넣고 반으로 될 때까지 졸여주고 식힌다.
-식은 화이트 와인 리큐어를 믹싱볼로 옮겨 준 후 노른자를 넣어 준다.
-중탕으로 강하게 휩을 해주며 사바용 소스를 만들어 준다.
-농도가 나오면 중탕냄비에서 꺼내 준 후, 정제 버터를 넣어가며 훌렌다이즈 소스를 만들어 준다.
에그 베네딕트 만들기
-소금을 넣은 물이 끓으면 식초를 넣어 주고 보글거리는 온도로 맞춰준다.
-물을 살짝 회오리 치게 만들고 계란을 깨서 천천히 익혀 포치드 에그를 만들어 준다.
-약 3분 정도 익히면 반숙 보단 덜 익은 계란이 나온다.
-베이컨과 빵은 구워준다.
-빵 위에 베이컨을 올리고 포치드 에그를 올려준다
-훌렌다이즈 소스를 올리고 마무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