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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영화 그린북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북’은 천재 음악가 ‘돈 셜리’의 남부 순회공연 중 일어난 일화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남부 순회공연을 함께할 운전기사인 클럽에서 관리인을 하던 ‘토니’를 고용하면서 시작한다. 인종 차별이라는 다소 묵직한 소재를 성향이 정 반대인 ‘돈 셜리’와 ‘토니’ 두 주인공의 티키타카로 잔잔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나갔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토니’는 별명이 ‘떠버리 토니 ‘라고 지어질 정도로 말이 많고 허풍이 심하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품위가 느껴지는 ‘돈 셜리’와는 시작부터 삐걱 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토니는 어떤 장면에서든 꼭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고 있는데 먹고 있지 않다면 담배를 물고 있다. 시종일관 절제된 자세와 도도한 표정의 ‘돈 셜리’와는 처음부터 맞지 않은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공연장을 돌며 남부로 내려가면서 ‘돈 셜리’의 음악에 조금씩 빠져드는 ‘토니’의 모습과 또 ‘토니’의 털털함과 꾸밈없음에 마음을 여는 ‘돈 셜리’의 우정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남부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인종차별은 조금씩 심해지는데, ‘돈 셜리’의 용기를 본 ‘토니’는 그의 남부 순회공연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주며 서로의 삶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다. 


로스트 치킨


이 영화에서는 꽤 많은 음식이 나온다. 영화와 음식을 주제로 글을 쓰는 나에겐 너무나도 멋진 소재 거리들이라 어떤 요리를 소개할까 행복한 고민까지 했다. 뉴욕의 핫도그, 출발할 때에 차에서 먹던 햄버거와 샌드위치, 휴게소의 미트볼 파스타, ‘토니’가 침대에 누워 접어 먹던 피자, 남부 술집의 오렌지 버드(아마 로스트 치킨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 이주민 가정의 크리스마스 음식까지 남부로 내려가는 내내 1962년의 미국 음식을 돌아본 느낌이랄까? 

그중 가장 의미 있게 본 장면은 당연 켄터키 주에서 공연을 할 때에 들린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장면 아닐까 싶다. 그 치킨으로 인해서 서로에 대한 경계가 조금은 더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격식 없이 손으로 치킨을 먹는 ‘토니’와 그에 손에 들려있는 치킨을 받기 조차 주저하던 ‘돈 셜리’. 단순히 치킨 먹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평생 맨손으로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던 그에겐 삶의 가치관까지 흔들리는 중대한 결정이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치킨을 한입 음미하는 ‘돈 셜리’의 표정은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치킨을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당신네 흑인 음식이라고 해맑게 이야기하는 토니를 보고는 화면 밖에 있는 내가 오히려 살짝 민망함을 느꼈다. 토니의 말에 의도에 불순함은 전혀 없다지만 프라이드치킨에는 미국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고단함이 함께 묻어 있는 사연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드치킨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에 정착한 스코틀랜드인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구운 닭을 선호하던 영국 이민자들과는 달리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은 닭을 튀겨 먹는 걸 즐겨했고 그런 백인들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은 그 조리법을 배워 향신료와 양념을 넣어 지금의 프라이드치킨이 탄생하였다. 유통과 냉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상대적으로 무더운 남부에서 튀김이라는 조리법은 대량으로, 일정하게 조리할 수가 있었고 또 보관하기가 다른 요리들보다 더 수월했을 것이다. 프라이드치킨이 흑인들 요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당시에 흑인 노예들이 구입, 거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육류가 바로 닭이었고 자연스럽게 닭 요리의 수요가 많고 또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호핑존

#그린 북과 남부 요리

그린북은 우체부인 ‘빅터 휴고 그린’ 이 유색인종을 위해 만든 일종의 여행 책이다. 편의를 위한 점도 있지만 당시 인종차별이 심했던 흑인들의 안전을 위해 작성한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상대적으로 차별이 심했던 남부 지역에서 조금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는데 재미있는 건 단순히 숙박 시설 말고도 유색인종을 위한 남부의 맛집 들의 정보까지 있는 꽤 충실한 가이드 북이었다는 거다.

남부 요리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에게부터 영감을 받은 요리가 많다 ‘호핑 존’은 미국에서 새해에 먹는 요리인데 부자가 되는 음식이라고 해서 쌀밥에 동부 콩, 베이컨, 양파에 향신료를 넣고 끓인 신년 음식이다. 또 ‘잠발라야’는 고기, 해산물 채소가 들어간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쌀 요리로, 이 요리 자체는 흑인들에게 탄생한 요리는 아니지만 남부에서 재배되었던 주재료인 쌀 자체가 아프리카 서부의 세네갈로 추정되고 있으며 재배가 어려운 쌀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재배 기술을 이용하여 미국 남부 지역의 부 축적에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음식은 그렇듯 역사와 함께 움직인다. ‘그린 북’은 인종차별에 대한 한 음악인과 그 친구에 관한 어쩌면 어두운 소재를 표현한 영화이지만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두 주인공의 미소는 미국 남부 힐링 먹방 투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다.


오스테리아 주연 오너셰프 김동기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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