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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닭백숙

옛날에는 으레 귀한 손님이나 또는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닭 한 마리를 삶아 대접한다.

냉장, 유통이 어려운 시절 집집마다 키우던 토종닭들은 유통기한이 긴 양질의 단백질이요 재산이었을 것이다. 영화 ‘관상’에서 나오는 백숙을 먹는 세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 ‘관상’

“관상가 양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읽기만 해도 바로 음성 스트리밍이 되는 것 같은 이 대사는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역을 맡은 ‘이정재’가 관상가 역을 맡은 ‘송강호’에게 하는 명대사이다. 

영화 관상은, 실제로 있던 ‘계유정난’이라는 한 역사에  ‘관상’이라는 흥미로운 요소와 관상가 ‘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이야기는 다소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영화 초 중반 내내 주인공 ‘송강호’와 처남 역을 맡은 ‘조정석의 케미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기에 부족함이 없다. 

몰락한 양반가 집안에 ‘내경’과 아들 ‘진형’, 처남 ‘팽헌’ 은 산에서 붓을 만들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내경’은 전국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유명한 관상가이지만 아들 진형의 반대로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한다. 몰락했을지언정 양반의 체통을 중요시하며 ‘진형’은 벼슬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엿보인다. 

투닥거리며 사는 세 명 에게도 큰 변화가 생긴다. 영화의 첫 장면을 사로잡는 김혜수 ‘연홍’의 등장이다. ‘연홍’은 한양에서 온 관상을 보는 기생으로 ‘내경’이 한양으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관상을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물론 그 과정에는 사소한 실랑이와 약간의 사기가 있기는 했지만 영화는 관상가 ‘내경’의 한양 상경 이야기까지는 아주 유쾌하게 진행이 된다. 김종서 대감과 관상 보는 일을 보게 되면서 ‘내경’의 관상 보는 능력은 아주 유용하게 쓰이며 출세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곧 영화는 역사 속 ‘계유정난’의 비극 한복판으로 빠져들게 된다. 

#관상의 닭백숙

송강호 ‘내경’과 김혜수 ‘연홍’의 첫 만남 장면은 정말 국가대표 배우들의 연기의 향연이다. 표정 하나하나 좁은 공간에서 오가는 말 한마디가 앞으로 볼 스토리에 기대감을 잔뜩 가지게 해 준다.

연홍과 잠깐의 담소로 받은 돈으로 ‘내경’과 ‘팽헌’은 닭백숙을 준비하며 ‘진형’을 기다린다. 팔팔 끓고 있는 무쇠 솥에 닭을 휘저으면서도 조정석이 연기한 ‘팽헌’의 푼수 빠진 행동들은 영화 내내 즐길 수 있는 중요한 오락거리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잘 익은 토종닭의 다리 하나를 죽 찢어 아들에게 주는 ‘내경’, 그리고 나머지 다리 하나를 바라보던 ‘팽헌’의 기대감을 무시하듯 자연스럽게 다리를 뜯어먹는 ‘내경’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송강호만이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연기 아니 었을까 싶다. 허름한 복장이지만 남자 셋이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닭백숙을 먹는 모습은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 속 백성들처럼 꽤 정감 있게 느껴진다. 그들은 앞으로 지금보다 멋진 옷,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만 영화가 끝나는 부분까지 셋의 이런 정감 가는 모습은 다시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닭백숙과 토종닭      

닭백숙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닭의 사육을 청동기 시대부터 하였다고 하니 문헌에 기록되진 않았을지라도 아마 삼국 시대 이전부터 닭을 삶아 먹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다. 백숙은 고기나 생선 등을 양념을 하지 않고 익힌다는 뜻으로 굳이 닭이 아니라 생선이나 다른 고기를 익힌 것도 백숙이라고 칭할 수 있다. 흔히 닭을 많이 먹기 때문에 닭백숙이라는 말이 입에 잘 달라붙는다. 토종닭은 단순히 삶기만 하면 안 되고 영화에서 처럼 무쇠솥으로 뚜껑을 닫아 마치 압력솥에 조리하는 것처럼 해야 단단하고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토종닭은 뼈가 굵고 육질이 단단한 만큼 국물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뽀얀 국물에 소금 조금만 쳐도 다른 재료가 필요 없는 보양식이 된다. 비슷한 요리로는 삼계탕이 있다. 백숙과 삼계탕은 조리하는 방식이 같은 요리이나 결이 다르다. 백숙은 토종닭이나 큰 닭을 있는 그대로 삶는 반면 삼계탕은 어린 영계에 ‘삼’을 넣어 조리한 것을 이야기한다. 또 백숙은 역사가 깊지만 삼계탕은 오히려 그리 길지가 않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요리책인 [조선요리 제법]에 삼계탕이 처음 명시가 된다. 그 후 1950년 이후 토종닭 백숙보다 삼을 넣은 영계백숙인 삼계탕이 더 유행을 하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양계 업이 크게 성장하고 그때 들여온 개량종이 성장이 느리고 번식이 더딘 토종닭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 6.25 이후로 미국에서 들여온 육계들로 인해 한동안 토종닭들은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 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토종닭의 개채수 확보와 또 토종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나 조금씩 조금씩 그 영광의 자리를 되찾아 가고 있다.

한국에서 닭백숙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뿔레 로띠’(로스트 치킨)이 있는 거 같다. 즐거운 파티 자리에 노릇하게 구운 통닭 한 마리를 큰 접시에 담아 들고 나오는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다는 점에서는 우리랑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오스테리아 주연 오너 셰프 김동기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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