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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Apr 26. 2023

애썼어. 그때의 나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며칠전 네이버 30대 워킹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자식을 두고 그런 엄청난 결심을 했을 때 그녀의 절망감은 어땠을지.. 감히 짐작이 안간다.

긍정적이고 밝은편인 나도 아이가 네살 때 쯤 이직을 했었는데 업무 스트레스와 육아 문제로 '그냥 내가 죽으면 이 상황이 모두 끝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한적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도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나의 15년 워킹맘 생활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30대 전에는 비교적 큰 역경이 없었던 것 같다. 삶에 도전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이 이유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살았고, 20대 때도 주어진 일만 하던 나였다. 큰 굴곡 없이 취업과 연애, 결혼의 과정도 순탄했다.


대부분의 여성의 삶에서 그러하듯이 내 인생의 첫 역경은 출산과 육아였다. 출산과 육아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원래 아이를 낳으면 시부모님께서 돌봐 주시고 나는 계속 일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 주시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예정에 없이 3개월의 출산 휴가 후에 육아휴직 3개월까지 추가하여 6개월을 쉬었다. 회사에 눈치는 보였지만 4년을 기다려 낳은 핏덩이를 남에게 맡기고 출근 할 수 없었다. 아이와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기도 했다. 회사로 복귀하기 전까지는..


결국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시터를 구하고,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하고, 눈치 보며 방광염이 올 정도로 소변도 참고 일하다가 퇴근을 하는 등 힘들게 직장 생활을 이어 가던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육아 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저성과자로 찍혀 지점으로 발령 명령이 떨어졌다. 10여년 동안 본사 근무를 하면서 늘 인사 고과 A만 받던 나였다. 출산과 휴직으로 인한 저성과자라니… 출산 전 성과를 인정 받아 본사 최연소 여자 대리 직함도 달고 별탈 없이 직장을 다니던 나였다. 


너무 자존심 상했고 보복성 발령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10년을 하루 같이 보아온 동료들과 이별하는 것도 싫었고, 동정하다시피 나를 보는 회사 내 사람들의 시선도 싫었다. 무엇보다 나의 커리어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너무 괴로웠다.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내가 한 아이의 삶을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일 문제까지 엮이니 더욱 힘들었다. 너무나 힘든 시기였지만 계속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마음껏 괴로워하지도 못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욱 힘들었다. 살이 8KG이나 빠질 정도였으니까. 어찌나 속이 상한지 생전 없던 위염도 생기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출근했다.


나중에 육아의 고충을 그린 영화 “툴리”에서 처럼 엄마가 된다는 건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 거였다. 나도 툴리처럼 현실이라는 폭격을 맞고 정신과 육체가 모두 산산 조각이 난 나를 돌봐 줄 보모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나는 이 일을 겪기 전 까지는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인생관으로 살았었다. 운명이나 팔자라는 건 노력하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변명과 핑계라고 자만하면서 살았다. 모든 건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었던 순진한 나였다. 자존감도 바닥을 찍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나의 좋은 지인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다. 뭉친 근육을 마사지하여 풀어내 듯 마음속 응어리를 말로 푸는 스타일이다. 말로 꺼내어 얘기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친구들이 얘기해주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가 된다. (이제는 그 것을 글로 하려고 노력중이다. )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하소연을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 퇴사까지 생각한 나에게 동료들은 말해주었다.


“젠리야 그건 니 잘못이 아니야.

우리 모두 니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야.

지점에 가서 있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본사 니 자리로 복귀할 수 있을거야”


“이 참에 니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도전해 보면 어때?”


내 자존감이 다시 살아나도록 주위 사람들이 끊임없이 북돋아주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바로 퇴사하려던 마음을 접고 업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지점으로 가서 3개월 정도 버텼다. 그렇게 유배당한 사람처럼 지내다 보면 다시 본사의 내 업무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지점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했지만 결국 얼마 버티지 못했다.


지점에 사람들은 참 좋았지만 마음이 없는 곳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 같았다. 회사에 애사심이 생기지 않는다는게 가장 못견딜 이유였다.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해야 하는데 열심히 일하고 싶은 동력을 잃었으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면돌파 하기로 했다. 시스템으로 인해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스스로 시스템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가장 잘하고 재밌어 하던 일을 위해 10년 다닌 직장을 관두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창업을 했다. 안정적이지만 나를 한번 배신한 회사를 택하기 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택해서 과감히 퇴사했다. 


그리고 육아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들을 위한 페이스북에서 육아당 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계기로 육아로 불이익을 받는 여성들을 위해 국회의원이 주최한 입법 회의에도 참석했다. 

선배 워킹맘으로서 똑같은 고통을 후배 워킹맘들에게 주기 싫어 굴지의 은행을 퇴사하고 베이비시터 매칭 O2O 서비스를 런칭하고자 창업했던 경험도도 있다. 나라가 해주지 않으니 민간에서라도 잘 해보고 싶었던 무모했던 나의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나는 다시 잠깐의 경력단절 기간을 거쳐 다시 조직 세계로 돌아왔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해내었다면 워킹맘 후배님들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었을까? 그 빛이 퍽퍽한 인생에 바늘 구멍만한 숨통이라도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겪은 고통은 내 세대에서 끝내야 된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모든 오지랖을 부렸다. 

그 당시 나는 엄마 전사였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끄집어 내어 터뜨리고, 밟고 극복하며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갖고 있는 문제를 묵히고, 외면하고 난 뒤에 그 찝찝하고 개운치 못한 기분을 그냥 보고 둘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억울함과 분노를 일에 녹여내어 열심히 살았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출산과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때 퇴사를 고민한다고 한다. 나는 커리어를 조금씩 업데이트 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선택하면서 일을 유지해 온 것이다.


출산과 육아의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나는 좀 변했다. 먼저 이제 사춘기가 된 아들로 언제 또 그 역경을 겪게 될지 모르지만, 초보 엄마일때의 나에 비해선 정신적으로 매우 초연하고 여유로워졌다. 한번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는 걸 깨닫고 난 후 왠만한 일에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경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를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긴 것이다. 또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감력을 바탕으로 많은 엄마들이 연대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시스템을 바꿔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육아를 하면서 인간적으로 더 강인해진 것 같다. 아이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내 것을 챙겨 먹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 의견을 똑바로 전달하는 스킬도 생겼다. 짓밟을수록 점점 강해지는 잡초처럼.. 난 점점 강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강인했는지 이제야 이해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워킹맘으로서 겪은 15년 그 과정을 겪으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이며 아직 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의 경쟁력이라는 자긍심도 생겼다. 


마지막으로 선배 워킹맘으로서 후배 워킹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힘내" 가 아니라 "힘빼" 이다.

너무 완벽하려 하지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말고 나부터 챙기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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