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내 글이 위로가 되겠냐만은

by Paz

그런 날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묘하게 신경이 거슬린다. 건너편 동료의 유창한 영어가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살아오지 못했냐는 자책이 되는 날이다. 그와 나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남남이지만 왠지 분하다. 저 사람은 잘 구축된 세계에서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아직도 혼란하냐고 자책한다.

문제의 핵심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있다. 하루라도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 상정한 정체성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우리는 매일 오락가락한다. 정보의 흐름이 빠른 지금은 더 자주 흔들린다. 나는 오늘부터 꼭 이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맹세한 나지만 그걸 오롯이 믿기에는 세월과 경험이 애매하게 충분하다. 결국 굳게 믿고 이끌어간다는 것이 달콤한 보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항상 어정쩡하다. 사소하게는 자동차 보증 만료로 인해 발생할 만만치 않은 비용 걱정에서부터 과도하게는 AI에게 위협받는다는 일자리의 이야기까지 쓸데없이 고민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고작 이 정도로 자신 만만했었나?', '고작 이것밖에 없었어?', '고작 이 실력으로 뭘 한다고'. '고작'이라는 자해도구로 뇌를 잔뜩 채찍질하고 나면 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위가 반응한다. 메스껍고 더부룩한 기분이 반복되고 감정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거꾸로 문장을 바꿔도 성립한다. 신체가 감정을 지배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밥이 주는 의미에 대해 그렇게 까지 깊은 관심이 없었다. 간혹 밥심으로 산다던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걸 먹는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이상해 보일 수 없었다. 어쩌면 반감도 들었다. '그렇게까지 본능적인걸 강조하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나에게도 오늘은 축복이 찾아왔다.

'고작'병의 메스꺼움에 저녁을 건너뛸까 하던 차에 아내가 육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두부찌개를 끓여줬다. 사실 순두부찌개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아에 치이며 열심히 끓여준 저 찌개를 거부하기에는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모질거나 눈치 없지는 않았다. 얼른 먹고 치워야지 하는 생각에 한 스푼 떠본다.

그런데 이 음식이 이상하게도 '고작'병을 치료한다. 한 스푼, 한 스푼에 '고작'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서서히 사라진다. 10,9,8,7,6,5,4,3,2,1,0 이렇게 순차적으로 사라지다 보니 0 이후의 숫자가 궁금하다. 0 다음은 -1일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고작 내 글이 위로가 되겠냐만은'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인류가 평화로웠던 시절은 전체 역사에 비해 0.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새발의 피, 혹은 백사장의 모래알 정도의 확률이다. 물론 평화라는 정의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를 논의해야겠지만 인간의 기본권에 한해서 이야기를 가정해 보면 지금은 분명히 평화로운 시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그건 아마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기본권의 위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의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현대 사회에서 기본권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믿고 따라가야 하는 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문제를 겪고 있다. 그 문제의 중심에는 결국 내가 믿고 있는 것(세상)과 삶의 부조화가 있다. 어떤 시련이 찾아온 이후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는 노력이라는 것의 답안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운이 나쁘면 평생 노력을 해도 삶의 부조화에서 인생이 멈춘다. 그래서 항상 정체성이라는 것이 어렵다. 정체성은 자아이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이기도 한다. 사람은 내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는 내가 믿는 세상만 존재한다. 그 세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혹은 무조건 흔들려야 한다.

문제는 흔들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흔들리기 때문에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세상을 살고 있더라도 오직 나의 행위로 인해서만 세상은 변한다. 한 걸음을 걸어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눈을 떠야 색을 구별할 수 있다. 눈도 뜨지 않고 한 발짝도 떼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에 있는 나를 상대로 '고작'이라는 말씨름만 하고 있다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고작'이라는 진도 강의 흔들림이 와도 세상은 어차피 흔들리게 되어있다는 가정 하에 움직여 나아가야 한다.



고작 순두부찌개의 힘을 받은 개인이 글을 써본다. 그리고 '고작 내 글이 위로가 되겠느냐만은'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위로의 힘을 보태고 싶다. 지금 당신의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건 지극히 정상이라는 공감을 보내고 싶다. 또한 '고작'이라는 기분이 들고 결과를 장담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가장 좋아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분명히 세상을 변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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