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효율적이어야 합니까?

by Paz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정확한 표현을 찾아들어가자면 머리만 복잡한 건지 아니면 신체 어느 부위고 할 것 없이 꼬이고 막힌 상황이라 머리가 복잡해지는 건지 아니면 머리는 복잡하지 않은데 이와 비슷한 상태를 관용적으로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머리가 꽤 복잡했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관용적 표현은 그 어감에 비해 의미가 간단하지 않다. 사실은 머리뿐만 아니라 아주 복잡한 개인으로서의 문제점을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에 그 깊이가 얕지 않다. 얕지 않은 문제에 당면했지만 한편 뭐 하나 특정적으로 가리키며 원인을 딱 잡아 낼 수 없기에 머리가 복잡하다는 정의를 내려본다.


굳이 용의자를 추려본다. AI인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버린 무게감인가? 40살을 바라보는 나이? 커리어 문제? 금전적인 문제? 이전과는 다른 주변에 아픈 사람들? 한가함? 지루함?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현재? 가득 찬 자존감에 비해 너무나도 평범한 현재? 위대해지는 것마저 포기한 권태감? 끝도 없이 써진다. 나의 콤플렉스 일기라는 것을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과연 몇 번째 목록에 이르러서야 괴로워서 멈추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포인트겠지 싶다. 다만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정말 무너져 내러 버렸으면 저런 다양한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저 다만 길을 잃은 아이처럼 어쩌지도 못한 채 말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거다. 이적의 정류장의 가사가 떠오른다.



이럴 땐 책도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최근 며칠간 발품 팔아 서점에 간 것만 몇 번은 된다. 갈 때마다 허탕을 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오직 책만이 그나마 나에게 존재감을 줄 것 같다는 작은 희망감으로 서점에 가보아도 어쩐지 갈팡질팡이다. 당연히 책을 고르는 건 나라고 생각하던 기존의 생각도 조금은 달라진다. 어쩌면 책이 나를 고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라도 하나 건져서 읽어보자는 요량으로 '2025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을 집어 본다. 책이라도 한번 써볼 요량인가? 재능 있다는 이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겨보지만 왜인지 이들의 재능적 번뜩임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외침만 가득히 맺혀 돌아온다. 이런. 지금은 책을 읽을 때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편리하고 AI는 명쾌하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동기부여 혹은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이들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아 맞아. 정말 그래. 그래 알겠어. 저게 핵심이었지' 하다가도 이내 곧 차갑게 식어버리면 대체 뭘 새롭게 시작할 마음이 나질 않는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이 동기도 고여버려서 냄새가 풀풀 날 지경에 이른다. 내적 동기가 고여버려 나는 냄새는 무기력의 향을 가지고 있다. 그저 한가하다는 말을 입밖에 내뱉으며 '대체 내가 지금껏 이룬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위대해질 수는 없는 건가.



경험이 단절된다. 모두 미루어 경험해 봤다고 판단하거나 핸드폰을 쉽게 들어서 AI에게 질문한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관용어가 맞아?' '네, 관용적 표현이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아, 그런가 보다. 글에 써도 되겠네.' 효율적인 삶이다. 이렇게 멋진 신세계에 살면서 대체 무엇 때문에 무기력의 향을 풀풀 풍기며 다 죽을 소리를 늘어놓는가? 단지 효율적이고 싶어서 그렇다. 효율적인 기준으로 그 누구보다 더 멋진 숫자를 가지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함과 지루함의 병에서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약일까 아니면 말기 증상일까.



문득 기타를 처음 배웠을 때가 떠오른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졸라 얻게 된 연습용 기타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신성우의 '서시'라는 곡의 도입부가 그렇게 멋졌다. 변변치 않은 악보를 어떻게든 웹서핑을 통해 찾아내서 PC방에서 한 장에 100원씩 주고 뽑아낸 300원짜리 타브악보도 보물이었다. 몇 날이고 며칠이고 딱 그 앞부분만 연습하다 보니 기타는 생전 처음 보는 초보가 코드의 존재도 모르지만 어쨌든 '서시'의 도입부를 치고 있었다. 그 희열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뿐인가 그 이후에 정말 순수한 열정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중에 안된 것도 많았고 꽤 집중한 것도 많았다. 물론 어느 것 하나 1등 수준은 없었다. 켜켜이 쌓여가는 1등이 되지 못한 삶의 흔적에 '나는 왜 1등이지 못할까?'라는 고뇌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취향들이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대관절 나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어야만 할까? 내가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한 건 역설적이게도 GPT와 브랜딩을 이야기하고 나서부터다. 시간은 유한하다는 생각에 내가 글을 쓰는 것조차 효율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몇 날 며칠 브랜딩을 했다.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 혹은 '내가 초안을 쓰면 네(GPT)가 잘 읽히게 바꿔줘'라던지. 이렇게 이런저런 설정을 마련해 두니 정말이지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 청개구리 심보인가? 애초에 나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무슨 전문가가 된 것 마냥 나를 브랜딩 해서 팔생각부터 하는 초짜에게서 뭘 바랄까? 그렇게까지 효과적이면 한가함과 지루함의 병은 낫는 걸까?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와 같은 깊은 목적의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난 오늘 내 글을 GPT 녀석에게 먼저 보이고 허락 맡지 않을 생각이다. 이후의 어떤 글도 내 재미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그렇게 할 예정이다. 소심하지만 나만의 저항법이다. 난 원래부터 그렇게 효율적인적도 없었고 사실은 특별한 적도 없었다. 그냥 조금은 특별하다고 착각하며 노력하고 조금은 남들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하며 그나마 바르게 살려고 사는 것이 내 방식이다. 너무 진지하게 살다 보면 같은 날들의 반복을 시스템이었다고 여길지 모른다. 평범했던 삶이 매트릭스가 되어버리는 거다. 설령 매트릭스를 산다고 해도 매일 다른 배경의 소프트웨어 위에서 살아간다면 행복했다는 착각으로 좋은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지도 못했던 한 사람이 효율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효율적이지 않고 싶다는 하소연이다. 멈추지 않는 뇌를 다운그레이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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