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days of marriage을 기념하며
옛날 옛날 한 백일 전 즈음에 비혼주의자 둘이 결혼을 했다. 코로나의 중심에서 혼인서약을 외쳤고, 일주일간의 신토불이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왔으며, 그렇게 신혼은 시작되었다.
남자는 나르시시스트(였)다. 제 맛에 살고 제 맛에 죽는 유형의 인간인데, 그만큼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하다. 가령 언제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어디서 평안과 불안을 느끼는지, 어떻게 쾌락과 분노를 느끼는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지나가다 ‘너 자신을 알라’고 툭 내뱉고 간다면 아마도 남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문제는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까지 자기만의 기준을 가혹하리만큼 철저히 적용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박이라 할 수 있는데, 아침에는 화장실 불을 켜둬야 한다거나(출근 준비하는 동안 계속 들락거리기 때문에 효율적이므로), 평일에는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말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어야 한다거나(느낌 아니까)와 같이 남이 보면 별거 아닌 일에 본인은 죽자 살자 신념을 지키려한다. 좋게 말하면 섬세하다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밴댕이 소갈딱지나 다름없다.
여자 또한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다. 하지만 매일 밤 한 침대에서 함께 잠드는 그녀를 남자는 아직 잘 모른다. 아니,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지나가다 ‘너 아내를 알라’고 툭 내뱉고 간다면 아마도 남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건, 여자는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한다. 바로 그 지점이다. 남자가 이 여자와 함께 살아가도 괜찮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지점.
스스로가 밴댕이 소갈딱지임을 아는 남자는 자신과 같은 동류와 함께 살게 된다면 매일 매일이 전쟁이요 머지않아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자신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상대가 노이로제에 시달리다 결국 도망갈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나 혼자 살겠다를 주창해왔던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밴댕이가 파리마냥 주변에서 알짱거려도 소처럼 무심하게 꼬리로 내리칠줄 아는 강인함을 여자는 가졌다. 그 힘이 바로 100일간의 신혼생활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물론 밴댕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100일의 신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사고 싶어한 머리핀을 몰래 사와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엽서와 함께 선물했다. 그녀를 위함인지 아니면 나르시시스트로서 해야할 일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기뻐했고 그 역시 기뻐했다, 어쨌든.
그렇게 두 비혼주의자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