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25년도 더 된 것 같다. 인터넷 가족 찾기 사이트 카페에 부모님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었다.
사이트에 사연을 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딸을 극장에서 잃어버린 사연이 비슷하다며 만나볼 것을 권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그녀를 만났다. 긴 파마머리에 키도 컸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릴 적 아이 기억엔 엄마라는 사람은 없었다. 어두워진 단칸방에서 홀로 잠에서 깨어난 기억들이 많다. 줄곧 아빠라는 사람과 단둘이 살았던 거로 기억한다. 엄마라는 사람은 죽은 사람 또는 기억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라 여겨졌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보육원에 입소하고 맨 처음 찍은 사진을 들고나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맞는다며 집에 가서 이모랑 함께 사진을 보고 딸을 찾았다며 함께 울었다고 했다. 자기 딸이 맞는다고 아이에게 얘기해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이는 아빠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말로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많이 싸웠다고 했다. 어느 날은 싸우고 난 뒤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아들만 데리고 집을 나가 자신의 친정으로 갔다고 했다. 집을 나간 뒤 남편에게 딸에 관해서 물었을 때 극장에서 잃어버렸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극장에서 딸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그녀가 물어보니 양심상 딸을 버렸다고는 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녀가 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남편과 싸우고 난 뒤 데리고 나간 아들이 그녀가 딸을 너무 그리워하는 말들을 하길래 인터넷 가족 찾기 사이트에 사연을 올려보라고 해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그 여자와 함께 사는 동거남, 이모와 이모부까지 나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가족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그녀는 믿을 수 없다면 유전자 검사하러 병원에 가자고 했다. 병원까지 이동할 때 점심을 먹은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내린 뒤 여자는 자신의 딸은 목 뒤쪽에 빨간 점이 있었다며 아이의 목 뒷덜미 쪽을 확인했다. 아이에게는 빨간 점이 없다. 빨간 점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더더욱 엄마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 검사하러 병원까지 갔지만, 휴일이라 병원 문은 닫혀 있었다.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한 채 그날은 점심만 먹고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아이의 기억과 일치하는 게 없었다. 엄마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두 번째 만남을 끝으로 한 동안 그 여자를 잊고 지냈다. 몇 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우연히 들춰본 수첩에서 그녀의 이름과 전화 번화를 발견했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두 번째로 그녀를 만났을 때 함께 나왔던 동거남이 전화를 받았다. 동거남이 하는 말이 엄마라는 그녀는 새로운 사랑 찾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그녀는 동거남을 떠나면서 '인제 와서 딸 찾아 뭐 하겠냐.' '자식에게 이런저런 잔소리 듣고 싶지 않다.' '편안하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아이에게 전해 주었다.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녀가 엄마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굳건히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그녀가 엄마라고 나타났는데도 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까? 첫 번째 만남과 두 번째 만남에서조차 그녀에게서 정이란 걸 느낄 수 없었다. 핏줄이라면 끌린다고 하던데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도 그녀가 엄마가 아닐 거란 생각에 묻는 말에만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엄마라고 나타났던 그녀는 20여 년이 지난 후 만난 딸에게 그다지 살갑게 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났다는 건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만약 진짜 그녀의 딸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모성이라는 건 없는 듯했다.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 같은 건 씹다 만 껌을 종이에 싸서 길바닥에 버리는 것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았다. 사랑 찾아 떠나버린 그녀에게 아이는 인생에서 눈곱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행복만을 찾아 떠나버린 매정한 모정이었다. 그녀는 이곳저곳 행복과 사랑 찾아 날아다니는 철새 같았다. 정말로 그녀가 아이의 엄마였더라면 상처라는 건 이런 거구나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이나 아이의 존재가 부정당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그녀와는 그 뒤로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아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문 수복'이라는 이름 석 자뿐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라고 아이를 찾아왔던 그녀가 엄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을 극장에서 잃어버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살 위인 오빠만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는 것도 아이가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지 맞는 말 같다. 그때 알려줬던 이름 석 자로 지금이라도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정말로 엄마인지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