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아이

by 시크매력젤리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 이야기는 글의 동력이다.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은 추억으로 기록된다. 형제자매 이야기도 마음껏 쓴다. 써야 할 글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런 그들이 부럽다. 오로지 혼자인 나에게는 부모 형제에 대한 어떠한 추억도 없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행여 내 상처가 들킬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며 가슴 졸이게 된다. 부모 이야기 형제 이야기할 때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부모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웃는 그들을 볼 때면 나는 어느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득히 먼 곳에서 이민을 온 인간인 듯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에 부모 형제자매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내게도 물어보면 거짓말을 한다. 있지도 않은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고 언니는 한 명 있다는 말을 보탠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솔직함은 '부모도 없이 잘 자랐네'라는 동정을 낳았고 독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사람들의 동정의 말들이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다. 그 이면에는 '부모 없는 사람들은 잘 자랄 수 없다'라는 전제를 두고 한 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위로와 동정 어린 눈빛의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 없이 살았다는 것이 동정의 대상은 아니다. 그저 살아감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꼈을 뿐이기에.

나에게 부모에 관한 솔직함은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릴 적 버려졌던 아이의 모습 그대로 아직도 그 길 위에서 울고 있다.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버려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았다. 또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다시 아픔이 새겨지지 않게 하려고.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쁜 사람이면 또 버림받을 테니까.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평생 가슴앓이 하면서 당신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찾으러 다닌다. 가족 상봉을 보더라도 실수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자녀를 찾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와 반대로 버리기로 작정하고 아이를 길바닥에 버린 부모는 자식을 먼저 찾아 나서지 않는다. 그게 죄책감인지 알 수는 없다.


보육원에서 자랄 때 형편이 어려웠던 부모들이 직접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 부모들은 아이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고 형편이 나아지면 찾으러 오겠다는 의지가 있는 부모들이었다.

사정이 어찌 됐든 아이를 길바닥에 버리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 생각된다. 아이를 버려놓고 두 발 쭉 뻗고 잠은 잤는지.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잘 먹고 잘 살아갔겠지. 죽을 때 자신이 버린 아이 생각은 났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을 버리고 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는지. 잠은 잘 오는지.


하긴 인간이라는 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서 잊어버리고 살아가지 않는가. 하지만 버려진 아이는 죽은 게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이다.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오십이 될 때까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버려진 충격으로 이름, 나이를 다 잊어버리고 살았다. 앞으로도 진짜 이름은 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부모라는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서 날 찾지 않는 이상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뉘엿뉘엿 늘어져 기울어진 태양을 따라 외로움도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길게 드리웠었다. 그 많던 아이들은 사라지고 혼자 외로움에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던 모습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외로움도 끈질기게 바짝 다가와 그림자 되어 떨어져 나갈 생각이 없었다. 외로움이 체취 되어 몸을 감쌌던 가슴 시렸던 그때를 기억 속에서 더듬어 본다.

이전 05화꼬꼬마 시절 보육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