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어릴 적 아이들과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팔방 놀이, 오징어 게임, 고무줄 놀이 하며 운동장에서 해 떨어질 때까지 놀았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재미나게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술래들을 피해 달아나 오징어 세모 머리에 안착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우리 팀이 술래가 되어 다른 팀 아이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열심히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빠져나간다면 또 술래를 해야 했기에 시뻘건 눈으로 힘을 주고 작은 몸을 이리저리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자전거를 탄 보육원 오빠가 내 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계속 들이미는 통에 아이들이 빠져나갔다. 화가 난 나머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그 오빠를 향해 시원하게 육두문자를 날려버린 것이다. 바로 그 오빠에게 집으로 끌려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 오빠는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한쪽 팔로 들어 올릴 만큼 작았던 몸이다. 등 쪽의 옷을 낚아챈다. 몸이 붕 떠올라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모습이 된다. 물에 넣었다 뺐다 담금질하듯 그대로 방바닥을 향해 얼굴이 내리 꽂히기를 여러 차례 반복됐다. 턱이 깨져 피가 흘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발로 차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울고불고해도 그만 하라며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어린 시절 그때는 그렇게 맞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시기였다.
육두문자를 시원하게 날린 대가로 그날 턱이 깨져서 피가 날 정도로 얻어터졌다.
찢어져서 피가 흘렀던 턱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그날 폭행으로 아래쪽 앞니 영구치가 자라지 않게 되었다. 영구치가 있어서 유치를 밀어 올려야만 아래쪽 앞니가 빠진다. 스무 살이 되어 라면을 먹고 있는데 아래쪽 앞니 유치가 빠졌다. 영구치가 자리 잡지 못해서 일곱 살 무렵 빠져야 할 유치가 스무 살이 돼서야 빠진 것이다. 그 후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아래쪽 앞니를 나란히 다섯 개나 의치로 끼우는 치료를 받았다.
부모가 있었다면 당하지 않았어도 될 폭행이다. 나는 이렇게 아팠는데 폭행했던 당사자는 기억도 못하겠지. 아래쪽 앞니 의치를 보면 그때 아팠던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