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닥 희망으로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족 찾기 유전자 등록으로 가족을 만났다는 소재가 여러 번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유전자 등록을 해야지 마음먹었다. 그 마음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먹고사는 게 우선이었고 부모를 찾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체념하고 있었던 터라 경찰서까지 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3년 8월에 회사에 하루 연차를 내고 경찰서에 가서 가족 찾기 유전자 등록을 했다. 등록이 되면 10년간 일치하는 유전자로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10년 후에는 기록이 소멸해서 다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남아 있었다. 절차는 간단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본, 신분증을 제출하면 인적 사항 물어보고 입안 상피세포를 면봉으로 묻힌 뒤 국립 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서 검사한 후 등록이 되는 절차다. 면담을 끝내고 상담자는 한 달 후 유전자 등록이 되면 그때 다시 연락해 주겠노라 말했다. 그렇지만 그 후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문자로라도 알려주는 서비스도 없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이라 하기에는 주먹구구식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이후 유전자 등록은 잘 된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가족 찾기 유전자 등록이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홍보가 되지 않아서인지 경찰서에서도 혼선이 있는 듯했다. 등록은 현재 거주 중인 소재지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절차들을 상담하는 사람조차 모르는 듯했다. 전화하지 않고 살고 있는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방문했더라면 헛걸음할 뻔했었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가족 찾기 유전자등록을 하려 한다'며 사정을 이야기하며 가족 찾기 담당자를 연결 부탁한다고 얘기를 했다. 다들 어디로 연결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부서로 연결되어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었다.
유전자 등록 제도는 장기 실종 아동을 이른 시간에 발견하기 위해 지난 2004년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20년이나 지난 제도가 시스템도 미비하고 홍보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가족을 찾기 위해 지금도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정부에서는 유전자 등록 시스템이 활성화되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유전자 등록을 해서 부모를 찾는다고 하니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해 왔다. "나이 오십에 부모 찾아서 뭐 하게?"라며 물어왔다. 내 나이가 오십이 면 부모 나이는 칠팔십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지인들의 부모를 보더라도 지병이 있어서 병간호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녀가 생활비를 보태야 하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도 시어머님이 아프셔서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버린 것도 알고 있다. 이제 와서 부모를 찾아 만난다고 해도 부담될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걸 지인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설령 부모가 짐이 된다고 한들 찾고 싶다. 보고 싶다.
부모가 없으니 홀가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아가 된다. 조금 빨리 되느냐, 늦게 고아가 되느냐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부모와 함께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는 것과 처음부터 부모 없이 살아간다는 건 얘기가 다르다. 그저 나는 세상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에게 다 있는 부모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한 순간도 놓쳐 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부모 손길이 필요치 않는 이때 부모를 찾는다는 건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본다. 내 존재를 있게 한 그들, 그런 나를 무참하게 버린 그들을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를 찾지 못한다면 평생 내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하다. 부모라는 존재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내 존재에까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어린 시절은 빨리 스무 살이 되어 보육원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순간이동이라도 하길 원했다. 이 고통의 외로움을 끝내고 스무 살이 되면 훨훨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고 그 시간 속에 잊히려 어떻게든 노력했던 존재였다. 잊고만 싶었던 어린 시절 기억나는 것도 없고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다 꿈이었길 바랐던 그때였다. 지나버린 과거이기에 부정할 수 없지만, 추억이라고 부를 수 없는 아픔 그 자체다.
유전자 등록을 한 지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일치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했다. 솔직히 유전자 등록이 됐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는 꼭 찾고 싶다. 나이 오십에도 그린다. 꿈에도 그린 엄마, 아빠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