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고 있을까
그녀가 하는 말 "아빠는 부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어"라는 말도 아이에게 전해준다.
버려진 당시 기억은 어렴풋하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아이가 집을 찾을 수 없도록 최대한 먼 곳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처음부터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연한 분홍색 원피스를 사서 입혔고 분홍색 구두까지 사서 신겨 주었다. 아무리 어린아이 일지라도 감정이 있으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행동과 표정 말투에서 아빠는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했다. 그 당시 아빠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신고했을 것이다. 미아가 되더라도 바로 보육원으로 보내지지 않는다. 기아 일시보호소에서 임시로 머물다가 보육원으로 옮겨지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면 차후에라도 찾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아빠는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진 마음으로 아이를 버리기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리란 생각은 한다.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생사를 같이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더라면 그때는 가난이 원망스러웠겠지만,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 땐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자식을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아이를 버렸다면 가슴에 한이 맺혀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아이는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들과 딸도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 때도 있었다. 예쁜 짓을 할 때면 '나도 어렸을 땐 저렇게 예뻤을 텐데'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언뜻언뜻 뇌리를 스치곤 했다. '내 부모들은 저렇게 예쁜 아이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지'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이는 유교사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라 생각한다.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기에 엄마가 집을 나갈 때 선택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신상문제가 생길 경우 큰아이보다 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나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남자로 태어났기에 엄마에게 선택받을 수 있었고 여자인 아이는 남겨졌고 버림받았다. 아이가 누나였고 남자아이가 더 어린 동생이었다면 엄마라는 그녀는 아마 그때도 아들을 선택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분노하는 건 가족들 그 누구도 아이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도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지금은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다. 가족 찾기 유전자등록도 할 수 있을 테고 경찰서에 직접 가족 찾기 신청서를 접수할 수도 있다. 유전자 등록만 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건만 세상에 버려진 존재를 그 누구도 아예 관심조차 두질 않았다.
아이를 버린 부모들은 아직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 부모 없는 하늘 아래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피할 수 없어 홀로 견뎌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항상 주눅이 들었고 차별당했으며 자의식도 낮았다. 눈치 보는 사람으로 세상과 아우르고자 노력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누구도 아이의 방패막이되어주지 않았으며 세상의 보이지 않는 선입견과 편견을 홀로 견뎌왔다.
아직도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는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그 아이의 인생은 버려진 날로부터 외로움과 홀로 맞서며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버려진 아이는 평생 부모를 원망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 어떤 이유로도 버려지는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