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에게는 부모라는 존재가 죽을 때까지 속만 애끓게 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하루하루가 폭군 아버지 그늘에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표현도 한다. 차라리 부모 없는 고아가 나을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이런 말들이 내게는 그저 투정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그들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살면서 사랑받았던 기억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살이에 방패막이라도 되어줄 수 있다. 사람들은 부모와 함께했을 땐 원망이 눈덩이처럼 커졌을지라도 먼 훗날 자신의 부모를 기억할 때는 원망하게 했던 그 모습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였음을 추억하곤 한다.
부모가 항상 폭력을 일삼는 얼룩진 삶이었더라도 죽을 때까지 원망만 했던 부모라 해도 그들에게는 원망할 부모라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원망할 그 누구도 없었다. 원망할 대상이 있었어야지 그리했을 텐데 갈 곳 모르는 원망을 쏟아내면서 오십 년을 살았다. 길바닥에 버려진 어린 시절 상처는 지금껏 살아온 나에게 버려진 아이라는 멍울을 빼 버릴 수 없게끔 하는 아픔이었다.
지나버린 어린 날의 상처를 기록하는 이유는 중년이 된 지금 사십 년도 더 지난 기억은 점점 뿌연 안개처럼 시야만 가리다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선명하지 않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아픔을 파헤쳐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외면받았던 상처라고 해도 곪아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꺼내기조차 두려웠던 상처를 이제는 말하려 한다. 상처를 들춰 도려낸 텅 비어 버린 가슴에 다른 무엇이 아닌 나로 채우기 위해서 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아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내가 될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로 존재하고 싶다.
과거를 뒤돌아보고 내면의 아이를 달래며 치유하는 과정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나도 이제 용기를 내 보겠다는 의지. 용기가 날 것 같다는 생각. 글쓰기로 내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삶을 끌어안으려는 나만의 시도이다. 상처를 긁어내고 새살이 올라올 때까지 쓰고 또 쓸 것이다. 이제는 갈 곳 모르는 원망만 할 게 아니라 날 버린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글쓰기가 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내면을 파헤쳐 적어놓은 글들과 함께 나의 내면도 함께 성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