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정상가족'에 집착하고 있다. 가족의 여러 형태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가족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한부모 가족, 조손 가정, 다문화 가족등이 있다. 꼭 혈연으로 맺혀야만 정상가족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나는 복지시설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열아홉 살에 독립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마다 거짓말로 여러 사람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이전 이력서에는 '호주성명'을 적는 칸이 있었다. 그 칸에 보육원 원장님의 성을 내 성과 같게 적어 넣던 밤, 거짓말의 죄책감보다 먼저 나를 덮친 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거짓말로 쓰지 않았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고아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돈도 제대로 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곳이었다. 아직도 복지시설에서 자라고 독립한 그들은 부모가 없다는 걸 말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 살아가기 위한 감춰야 할 비밀이기 때문이다.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었고 질 좋지 않다는 평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건만 아직도 어릴적 부모없이 자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모 없는 게 내 잘못이 아니다. 침묵과 거짓말로 이루어졌던 지난날들에 아직도 사회를 부정하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이러한 선입견 선두에는 우리나라 가족의 형태가 잘 못 되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여러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고 갇혀있는 시선 제 멋대로 단정 짓는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에 쓰여 있다.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 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가족이라는 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유기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복지제도를 통해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흘기는 듯한 상처로 마음이 굳게 닫혀버린 많은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아픔을 후벼 파는 고통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나라가 정상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고아라는 이유로 차별은 기본이었고 존중받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환멸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