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by 시크매력젤리

세 번이나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건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두 살 위인 오빠만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린 엄마.

남자 혼자서 딸을 키우기 힘들다며 극장까지 데리고 가서 딸을 버린 아빠.

25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났지만 인제 와서 딸 찾아 뭐 하겠느냐며 자신의 사랑과 행복 찾아 떠나버린 엄마.


이유도 모른 채 항상 버려지기만 했던 내 존재.



세상이 두려워 회피했던 그 모든 순간. 스무 살이 되어서도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던 순간순간들. 사람이 두려워 상처를 드러낼 수 없었던 힘겨운 세상살이. 어쩌면 이 모든 게 나로부터 시작인 것을. 내 존재였던 것을. 그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깊이 생각하지 않은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탓에 오십이라는 시간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이런 무심함이 고맙기도 하다.


생각하는 걸 귀찮아했다. 생각이라는 걸 할라치면 불편한 그 감정들이 들이치는 게 싫었다. 생각이라는 걸 휘발시키려 '뭐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흘려버렸다. 그 덕에 흘러가는 대로 '현재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라는 명목 아래 시간을 보내며 이 나이까지 먹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생각도 하지 않고 '삶은 다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하며 살았다. 그러다 죽을 날이 오면 '죽음이 나에게도 오는구나'하며 후회하는 삶 속에 그렇게 살다가 죽을 뻔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자꾸 되물으며 생각을 휘발시키지 않으려 글을 쓰며 기록한다.


괴로움이나 슬픔을 느낄 때 잠자는 걸 택했다. 한 마디로 회피였다. 이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잠을 잤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상처 또한 마주하기가 힘들었는지 회피하려고만 했었다. 이제야 상처를 마주하며 나를 위로하려 한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며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혀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니고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형태만 다를 뿐 누구나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가 어떻게 작용했느냐에 따라 울분이 되어 나오기도 하고 결핍 때문에 성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부모라는 결핍이 있었기에 지금, 이 글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내 상처가 어떤 이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혀서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행복한 상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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