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날
그녀는 요양원에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아빠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예순셋에 세상과 작별했다. 술을 즐기며 좋아했던 그녀의 아빠는 젊은 나이부터 많은 질병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빠의 그 고통과 모든 괴로움들은 그녀 어깨 위에 지어진 짓눌려버린 무게였다. 하나뿐인 딸로서 이 모든 고통들을 감당해야 했다.
아빠가 떠난 뒤 그녀는 빈소조차 차리지 않았다. 죽어서도 찾아올 이 없을 거란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빠의 남아있는 형제들과 친인척 몇 명이 다녀갔다.
아빠가 마지막 관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는 울분을 토해내며 운다. 입 속에서는 울음과 함께 말이라는 소리가 나왔지만 함께 섞여버린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서럽게 울어댔다. 아빠를 떠나보내며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그녀에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울고 싶을 때 맘껏 울고 보내 줄 사람은 보내는 게 인생이다. 입관식에 함께 들어갔다. 죽어서 태워질 몸뚱이에는 무슨 치장을 그리 했는지 궁금했다.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모습조차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가슴 아프지 않게 위해서일까.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삶을 이어나갔다. 스무 살 초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살았다. 남편은 자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는데도 얼굴 한 번 비추질 않았다. 그 모든 걸 그녀의 스무 살 된 딸과 둘이서 장례를 치르며 난관을 하나 둘 해치웠다.
그녀의 엄마는 말기암이라고 했다. 엄마조차 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박복한 삶.
그녀는 그런데도 원망하지 않는다 했다. 원망해 봤자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그나마 다행이다. 삶을 밑바닥으로 꼬꾸라트리지 않고 희망이라는 걸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삶은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녀 앞길에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