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얼른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순간이동이라도 해서, 스무 살이 되면 고통스러웠던 외로움을 벗어버리고 어디든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잊혀지려 어떻게든 애쓰는 존재였다.
그 시절의 시간은 느림보 거북이가 바다 모래 위에 한 발자국씩 찍고 또 찍는 동안처럼, 끝없이 길고 지루했다. 외로움의 고통이 커서였을까. 언제나 타인을 갈망했지만 쉽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한 걸음, 또 한 걸음 물러섰다. 내가 보이질 않길 바라며, 스스로 모래바람 속에 내 존재를 감추었다.
하염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두 눈을 뜨고 살고 싶지 않았다. 한쪽 눈을 찡그리듯 감고, 남은 눈으로는 그 일과 상관없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곤 했다. 봐야 하는 건 쳐다보기 싫었다. 피하면 다 해결될 거라 믿었다. 회피가 답이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안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느꼈으니까.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때의 아이에게 회피는 약함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었다고. 거북이가 등에 무거운 등껍질을 이고,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듯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왔다. 자주 지워지던 작은 발자국들이 쌓여 길이 되었고, 그 길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보이질 않길 바라던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그 외롭던 시간속에서도 잘 버텼고, 잘 살아왔다고. 파도가 언제나 세찬 것만은 아니라고. 봄은 약속처럼 돌아오고, 메마른 가지에도 초록 잎이 돋아, 꽃은 다시 피어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