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엎지른 뒤 얼룩이 남은 책처럼, 내 마음도 축축했다. 살며시 스며앉는 빛이 필요했다.
요즘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에 심취해 있다. 마침 어제 우리 집에 들어온 보스턴 고사리가 있었다. 음악 소리를 높여 틀고 아이 둘을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다른 아이들도 목말라하길래, 시원하게 물도 부어줬다.
그 사이에 나는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베란다 뒷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었는지 금세 흐려졌다. 이 상황을 받아들여서일까, 되풀이되는 현실을 잠시 놓아줬기 때문일까. 나도 날 알 수가 없다.
얼룩진 마음을 내비치진 않는다. 그저 내가 감당해야 할 얼룩이니까. 뜨거운 햇빛,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 눈을 편안하게 해 주는 초록, 오늘의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