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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28. 2022

정신 차려, 이 이상한 세상에서

곱씹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직접 얼굴을 마주한 면접은 수개월 만이었다. '마케팅'이란 커다란 용어를 써가며 공고를 여러 개 올렸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아, 사실 알고 있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꽤 익숙한 분야의 공고라 '그럴 수 있지'하고 대충 넘겼다. 건물은 멀쩡했다. 사무실도 기대 이상이었다. 에어컨 바람도 시원해서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때 있기 좋겠다. 들어가자마자 양복을 빼입은 사람이 안내해주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내 레이더가 작동한 게.


- 일하고 있던 다른 사람에 비해 정석으로 갖춰 입은 직원.

- 심지어 기존 얘기한 가이드라인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면접 보고 있던 면접관의 눈치를 봄.

- 면접을 보다 나와 잠시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하는 면접관.


작은 회사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현장 그 가운데 혹은 근처 카페에서 면접 본 적도 있다. 너무 바쁘거나 인력이 부족한 경우 대표님이 직접 맞이해주신 적도 있었다. 다만, 수상쩍다고 느낀 건 지금부터였다. 


- 안내받은 시간에서 30분을 훌쩍 넘겨서야 입장해 자리 잡자 이면지에 내 이름을 슥슥 씀. 

- 사용한 그 이면지는 계약서 사본이었음.

- 채용공고에 자세한 업무가 쓰여있지 않았는데 회사 소개부터 업무, 연봉제 설명함.

- 연봉은 사실상 성과제인데, 일반적인 성과제가 아닌 '(기본급이 없는) 올 성과제'라고 함.


셈이 빠르지 않지만 '올 성과제'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 전문 영업직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인센티브를 받고, 영업 업무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올 성과제'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 시간 반 내내 회사가 만들어낸 업적과 이전 직원들의 성과, 대표 본인의 능력 등을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만약 '올 성과제'를 선택했을 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몇 주간 찍히는 돈 없이 그가 가지고 있는 녹취록, 문자, 카카오톡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일뿐이었다. 


겨우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화상 입은 다리로 오랜 시간 걷거나 앉아있지 않았던 난 벽에 거의 기대어 있었다. 그런데 나를 살려주려는 하늘의 뜻인 건지 (무교임) 함께 면접 본 면접자는 영업직에 근무 중인 이직 준비자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금 본인도 영업하고 있지만 듣도 보도 못한 연봉제라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이쪽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한가, 로 대충 퉁치고 넘길 수 없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온갖 회사 면접을 한창 보러 다녔던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들은 당장 요즘도 그런 회사가 다 있다며, 어려운 때 지원자들 공짜로 뽑아먹는 거라고 정리했다. 명쾌한 마무리에 낄낄거리며 다른 얘기도 한창 곁들이다 집에 도착했다. 돈이 급한 사람에게는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 법하게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무실 월세에 대해 말하지만 직원의 기본급은 언급하지 않았고, 본인이 자금 유지하는 법은 떠들지만 직원이 영업 외 회사에서의 일상을 유지하는 법은 잘 모르는 듯했다. 무엇보다 전 직원의 좋은 인성의 근거가 일등 성과라니, 주변 동료와 불화를 일으키는 건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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