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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Feb 07. 2020

나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응원하는 법

늘어지게 누워있고 싶었지만 커뮤니티 활동이 있어 일어나자마자 씻고 노트북을 켰다. 온라인을 통해 듣는 강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머리 속은 여전히 많은 생각으로 웅성거렸고 그렇게 머무르고 있을 수 없었다. 우선, 카페로 향했다.


퇴사를 앞두고 내가 회사에 요청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커뮤니티 멤버들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건 이전의 나와 다른 모습이었다. 다짜고짜 누군가에게 구구절절 감정을 털어낸 게 아니라 감정을 정제한 후 말한 것. 올해 내가 했던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진심 어린 걱정과 정보가 넘실거리던 화면을 덮고 나니 겨우 머리 속이 조용해졌다.


미리 신청해 둔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강연은 다양성에 관한 것이었다. 강연자의 경험을 빌어 기분을 환기시킬 상상을 몇 개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퇴사 이후의 내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지금껏 많은 틈을 경험했지만, 대부분 슬펐다. 애써 몸을 일으켜 공부하고 산책을 하던 내 모습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집 밖에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그랬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노트북을 켰다. 내 머리 속보다 더 정신 없는 막장 드라마가 보고 싶었다. 그 와중에 좋아하는 배우들이 맞붙는 장면이 있어 한참을 보다가 늦게 잠들었다.


정오 즈음에 일어났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하는데 분쇄되지 않은 홀빈 한 통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머리를 짚었다. 오전 루틴 중 하나는 커피를 내려마시는 일인데 그것조차 하지 못하다니. 잠시 엎드려 휴대폰 게임을 했다. 10분, 20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보니 더 막막하다.


내 기분을 잘 아는 것도 나, 그걸 최적으로 끌어올릴 방법을 아는 것도 나니까 다시 움직였다. 이런 날은 물건을 버리고 새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드니까. 시작을 앞둔 나를 응원해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그날의 콘텐츠

- 웨이브 [시크릿 부티크](SBS)

- 웨이브 [정해인의 걸어보고서](KBS)




이 글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하나, 특정 인물 및 상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 상상력을 동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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