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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12. 2020

엄마는 아직도 사과를 한다

이제 화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종종 사과를 한다. 엄마에게 본격적으로 사과를 받은 건 고등학교 때부터. 사과는 예기치 못한 때 터져 나왔다. 나는 항상 교사가 될 것이라 믿어왔다. 진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르면서 그저 엄마를 비롯하여 주변 어른들의 말대로 가만히 있으면 교사가 될 줄 알았다. 결과는 예상하다시피 교대는커녕 대학이나 학과를 고를지도 몰랐다.


수시 등록 기간이 다가오면서 답답함은 커져갔다. 지금까지 그랬듯 부모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은 걸 깨닫자 배신감을 느껴졌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는데, 아니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눈 엄마에게 화냈다. 그때 엄마를 향해 뱉은 말들 중 기억나는 게 한 문장 있다.


“나는 뭘 좋아하는 지도 싫어하는 지도 모르겠어! 다 엄마 때문이야!’


앞뒤가 안맞는 말인 줄도 모르고 말했다. 길길이 날뛰는 나를 보던 엄마는 소리쳤다.


미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모르겠어!


그 말을 듣자 왠지 속이 시원했다. 서로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화를 내다가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말한 사과 한 마디에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 같았다. 이후에도 몇 번의 갈등과 굴곡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사과했다. 상황은 항상 비슷했다. 나는 화가 나있고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사과했다. 그게 몇 년에 걸쳐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잠시 잠잠해졌었는데 엄마가 심리 상담을 공부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고 또 유튜브를 통해 오은영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과하기는 시작되었다. 사과를 받을 때마다 눈물 쏟기를 몇 번 반복했더니 몇 년 전부터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또 시작인가, 하며 웃음이 나왔다. 반면 엄마는 매번 진심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했었고 그건 이렇게 해야 했었다는 설명을 하며 구체적으로 말했다.


엄마는 엄마라는 역할을 타고나는 것이 아닌데 왜 엄마는 이렇게 엄마 같을까.
반면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역할을 타고나는 것이 아닌데 항상 엄마 앞에서는 마냥 자식새끼(!)의 모습일까.


오늘도 마침 엄마의 사과를 받았다. 이제 엄마의 사과하는 모습도 편안해 보인다.
사과받는 나도 더 이상 마음이 울렁거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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