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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15. 2020

아흔셋, 할머니

할머니는 시간 여행 중

아흔셋, 치매 걸린 할머니 여전히 목소리가 크고 고집이 세다. 무엇보다 본인이 치매 증상이 있음을 알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집을 고쳤다. 도배, 장판 그리고 각종 가구를 새로 사들였다. 주변 사람들은  돌아가실  집에  돈을 들이냐고 했다. 할머니가 우리와 언제 이별하든 깨끗하고 좋은 곳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공사가 끝난  할머니는 좋아했다. 훨씬 밝아진 집을 구경하러 오는 동네 사람이 많아져서 혼자 먹던 식탁에서 외삼촌을 비롯해 같이 먹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매일 좋은 말을 듣는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공사 이후 마무리 작업을 위해 엄마와 아빠가 할머니 댁에 갔다. 자잘한 주방용품과 필요한 물건으로  곳을 채웠고, 보수가 필요한 곳까지 살폈다.

할머니의 시간은 이제 3-40 전에 머물러있다. 현재는 대부분 사라지고 왜곡되고, 가까운 과거는 기억이    듯하다. 오랜 옛날만이 할머니의 현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와 아빠를 보면 할머니는 가까운 과거로 거슬러온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며 항상   박스를 사놓고, 다음 날이면 콩나물국을 끓이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점점 치매 증상은 심해져가는 와중에 비가 쏟아지는 주말 아침이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어느새 돈을 찾아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향했다. 옆에서 잠들어있던 엄마는 깜짝 놀라 할머니를 쫓아갔다. 새벽녘이라 동네 슈퍼는 모두 닫혀있었고, 겨우 할머니를 따라잡은 엄마는 함께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할머니는 사위 콩나물국을 빨리 해야 하는데,   뿐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려 짐을 정리하는  할머니가 엄마를 찾았다. 목소리를 낮춘  엄마를 찾은 할머니는 냉장고 안에 있는 생선과 고기를 내어주려 했다. 엄마만 보면 온갖   내어주던 할머니의 습관이었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담가  김치, 생선, 고기, 나물,  등으로 냉장고를 채웠었다. 내가 태어나기 ,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냉장고를 보고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준 적도 있었고  냉장고 구석구석 채워주기도 했다.  습관이 오래 남아 여전히 엄마가  쓰는  안타까워하고 빈손으로 보내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할머니가 겪고 있는 시간 여행을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할머니가 아주 어린아이가  때까지 함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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