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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27. 2020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요즘 TV를 보다 보니 떠오르는 일이 있다. 


유독 일이 많은 한주였다. 꽤 많은 시간 자고 일어났지만 피곤한 주말 오전. 눈뜨자마자 전날 진행한 행사 반응을 살피려 SNS를 둘러보다가 한 곳에 멈췄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해당 커뮤니티 특유의 자조적인 유머 같은 거였다. 그런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 유머에서 연상되는 한 유명인이 해당 게시물에 댓글을 단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등판해 댓글을 달았는데 그 짧은 댓글의 내용이 전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기세는 대단했다. 종일 그 커뮤니티에는 해당 내용을 게시한 사용자, 댓글을 단 다른 사용자들에게 일일이 반응했다. 다음날까지. 그의 다음 행보는 본인 SNS에 해당 이슈에 대한 설명과 의견을 담은 글을 게시한 것. 그는 종종 가끔 SNS에 길고 긴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업무로 인해, 익명의 사용자들의 반응으로 인해, 너무 많은 글로 인해 온갖 피로가 밀려왔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정의하는 글이었다. 일전의 상황을 설명했고 가족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두통이 밀려왔다.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읽을 때마다 나는 어땠을까? 부아가 치밀었나? 화가 났나? 짜증이 났나? 아니, 부러웠다.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떤 글을 쓰던 누군가를 거슬리게 하는 단어가 있을까 검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검열하고 또 검열하다 결국 글을 올리지 못하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남기는 짧은 감상을 업로드하기 전에도 많은 시간을 검열하는데 쓰던 날들. 또,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만 누군가 듣고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로 줄기차게 봤던 여느 뉴스의 주인공이 될까 가만히 견디던 순간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장면과 생각이 터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 말 못 해서 억울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ㅋㅋㅋ). 그동안 나는 가까이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두려워했다. 내 삶과 경험, 듣고 본 모든 것들만 봐도 분명히 나를 이루는 키워드 중 하나로 담을 수 있는데 그 말을 입안에 담기가 무섭고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두려움에 대한 것보다 연대하는 이들의 존재를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서로 속도가 다르고 결이 달라도 결국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표가 같음을 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의 죽음을 모른척해왔기에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방법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거룩한 분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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