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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l 01. 2020

혼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독립을 하고 싶은 거야

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은 지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부모님과 생활 루틴이 비슷한 덕분에 그들이 각각 출근 및 외출을 하면 내 일상이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잠깐 읽고, 오전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카페를 가거나 운동을 다녀온다. 무엇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원룸이 아닌 아파트도 아닌 주택에서 머문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라고 생각하며. (물론 저는 주택 2n년 거주자로서 청소 및 관리가 너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쾌적하고 평화로운 날들 중 딱 한 번씩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 때가 있다. 괜찮은 일상을 보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특히 치킨을 먹고 싶을 때. 평소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사라지는데 그 날은 먹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과 달디 단 양념치킨, 여기에 차디찬 콜라가 먹고 싶었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야! 라고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저녁 메뉴를 알렸다. 친구들은 이 뜬금없고 시답잖은 외침에 정성 들여 대답해줬다. 어디에서 시킬 건지 언제 먹을 건지 어떤 음료를 곁들일 건지 등 이에 나는 준비해놓은 것처럼 신속하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원하는 그림이 있다. 치킨을 시켜둔 다음 편의점에 들러 4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사들고 들어가서 혼자 먹는 것. 그 사이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맥주컵을 샤워하기 전에 냉동실에 넣어두는 일. 샤워를 마치고 나와 넷플릭스나 왓챠를 켜서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켜고 그 앞에 앉아 치맥 하는 풍경이 좋다. 그 풍경 속의 나, 정말 완벽하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다가 막상 집에 들어가려는데 아차 싶었다. 잠시 혼자 산다고 착각한 것이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럼 치킨을 반찬으로 일부 내어주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구나 싶었다. 아니다, 한 세 조각만 들고 들어와 맥주랑 같이 먹어도 되겠지? 가족들과의 시간을 좋아하긴 하지만 한 마리를 다 못 먹을 치킨이어도 온전한 모양이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쩌지.


사실, 치킨 몇 조각만 내 앞에 있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건 치킨을 시켰다고 했을 때 나를 향하는 시선과 말이었다. 아빠는 간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 엄마는 오랜 시간 당뇨를 앓고 있어 식단을 바꾼 지 오래되었다. 절제하는 방식인지 뭔지 몰라도 당뇨에 해가 되는 음식 앞에서는 힘주어 비난의 말을 꼭 내뱉는다. 무슨 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좋은 기분을 유지하며 먹기에는 부적절한 자리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벌써 한 차례 겪은 것처럼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꼭 먹고 싶으니까 우선 시켰고 가족 단톡방에 치킨을 시켰다고 남겼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오랜만에 치킨을 먹어보겠다며 반가워했다. 그래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 배달 온 치킨을 받자마자 밥상 위에 세팅했다. 내 마음을 꿰뚫은 것처럼 들어있던 얼음컵을 보고 잠시 감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와중에 치킨을 슥 쳐다보며 자리 잡은 아빠도 웬 치킨이냐? 하는 말뿐 다른 말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이 지점이 유독 맛있는 건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평소 두 조각 정도면 되는 엄마도 서너 조각을 먹었고 양념 치킨은 먹지 않는 아빠도 날개를 먹기 위해 나섰다. 아주 오랜만이면 이렇게 거슬리는 말 한번 듣지 않고 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 사실 이런 생각의 곁가지를 펼칠 생각 없이 먹고 싶다.


그래서 이 날만큼은 빨리 (재)독립하고 싶었다.


치킨을 먹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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