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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23. 2020

어쩌다 보니 정성 들여 살기로 했다

비건 식단과 거리 좁히는 중


텀블벅을 통해 한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목표를 달성하여 결과물을 받아보았다. 포스터와 채식 레시피. 사계절 포스터 중 하나는 방 한편에 붙여두었고 레시피는 종이로 인쇄했다. 채식, 그러니까 비건 식단은 내게 너무 멀고 어려운 장르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접하기 쉬웠다. 비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식당, 베이커리, 밀 키트 등이 생겨났으니까. 하지만 부모님 댁에 오니 아예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곳에서 비건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롯데리아와 서브웨이. 그러니까 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먹기란 상상으로만 가능할 뿐이었다. '비건'이란 것이 꿈결처럼 아련해지던 무렵 비건 레시피를 받아보았다. 사계절 별로 나뉘어 사진과 함께 적힌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무엇보다 그 재료들이 모두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었고 빠르게 요리를 시작했다. 냄새는 참 좋았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특히, 우리 가족 중 주방에 드나드는 횟수뿐 아니라 내 손으로 뭔가 해 먹지 않았기에 엄마는 곁눈으로 나를 끊임없이 감시했다. (혼자 있을 때는 잘해 먹지만 가족과 있으면 세상 손발 없는 사람이 되는 건 나뿐일까)


결과적으로 첫 채식 레시피는 성공적이었다. 덮밥 요리였는데 꽤 맛있었고, 유독 너무 더운 날 불 앞에서 만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엄살) 맛있어서 그쯤은 참을 수 있었다. 여름밤의 여유에 이어 한 끼 식사도 내가 만들어먹을 수 있는 곳이었구나, 하고 혼자 새삼 끄덕거렸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단 한 줌의 관심을 주지 않은 엄마 덕도 있다. 맛보기 전 걱정하는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기까지 했으니.


하루를 돌아보며 잠들기 직전, 인스타그램에서 #채식레시피 해시태그를 팔로우했다. 슬슬 살펴보다가 눈에 띈 것이 토마토볶음면이었다. 다음 날 점심 즈음부터 냉장고를 몇 번이나 열고 닫으며 재료를 준비했다. 소면 대신 50원짜리 동전만큼 남은 스파게티면으로 대체했고, 야채는 그 두배 분량으로 때려 넣었다. 마침, 옆에서 온갖 야채를 채 썰고 있는 엄마에게 슬쩍슬쩍 노동을 분담하게 하니 더 빠르게 만들어냈다.


다 먹고 나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한 끼 한 끼 정성 들이는 사람이 되었나 싶다. 


저녁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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