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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Sep 12. 2020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될까?

책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지음 (현암사)

콘텐츠를 접하다 종종 울컥할 때가 있다. 내용이 슬프거나 감동적이거나 속상하거나. 특히, 가족 관련 내용이라면 나는 콘텐츠 짜임새와 관계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눈물을 짜내고 만다. 요즘은 좀 달라졌다. 가족 서사보다는 어떤 깨달음을 느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이걸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가 영어에 관심이 많은 만큼 실력도 좋았다면 나를 표현하는데 거리낌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책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한국어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 덕분이다.


사실, 이 책은 꽤 오래전 SNS에서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에 대해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귀 때문에 알고 있었다. 이 부분만 보고 ‘자기소개서’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직무를 설명해보라 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너무 잡다해서” 술술 말하기 힘들다고 한다. 여기서 잡다한 일을 한다”의 “잡다”를 버려야 한다. 다재다능한 나에게 일종의 경멸을 심는 말이다. 이 경우 “나는 여러 성격의 많은 일을 한다 I do a lot of different things.”라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이력서 쓸 준비는 시작된다.


저자는 한국에서 토플 강사로 7년간 일하다 미국으로 갔다. 돈 잘 버는 강사가 되려다 바이링구얼리즘에 눈을 떠 석사 학위를 수료하고 난 뒤 돌아와 소통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 부분을 읽고 ‘7년간 토플 강사였던 사람의 뉴욕 브이로그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온갖 짐과 심지어 강아지까지 함께 미국 한 공항에 도착한 저자는 집도 구하지 않은 채 3일 후면 노숙자 신세나 다름없었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얼어버려서 그런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 여차저차 운 좋게 집을 구했고 이후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중 윗사람에게 똑바로 서라는 말을 건네어야 할 때나 누군가의 기분(kibun)을 거스르지 않아야 할 때 길어지는 우리의 말을 짚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기에 인식하지 않았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속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뿐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 언어는 빈곤해지고 있었다. 짜증 나서 우는 상황에 내가 정말 짜증이 나서 울었는지, 좋다고 말은 했는데 기분 자체가 좋았던 건지 행복하다고 말로 대체하기에는 부족했던 건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나도 지친 상태이다 I’m exhausted, too”라고 대답했다. 덧붙여 지친 것과 공포는 구문해야 하며, 머릿속에서 공포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고, 그 상상된 공포 때문에 지금 비참한 miserable 것은 미래에 행복한 삶을 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말해주었다.


넉살 좋은 사람처럼 행세하면 괴로운 상황을 빨리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수록 상대방의 공격은 교묘해졌다. 공격이라 함은 이런 것이다. 대충 관용구 같은 걸 던졌을 때 내가 그의 기분과 구체적인 상황을 다 파악한 후 원하는 대답을 해주길 바라는 것. 내가 나이 드는 만큼 꽤 집요하고 치밀한 공격을 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래서 20대 어느 기간의 나는 그런 공격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그런 사람을 대놓고 무안 주는 과격함을 띄고 있었다. 운이 따른 덕분에 요즘은 에너지를 덜 들이며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경험 덕분(?)인지 성희롱, 불필요한 농담, 필요 이상의 정보 제공을 해야 하는 상황 등에 대응하는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오롯이 혼자였으면 어려웠을 텐데 주변에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친구와 지인이 존재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런 용기를 내는 과정에 저자에게 유용했던 것이 영어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거나 너무 복잡한 상황을 영어가 환기한 것이다. 질문이 무안하지 않은 상황,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 업무를 제안하는 상황을 쉽게 하는 것이 영어라니. '영어를 잘해서 그런 걸까?'라고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내게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영어임에도 해외여행을 가거나 대학/학원 수업을 들을 때 사용했던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영어를 쓰는 나는 모국어를 쓸 때와 조금 다르다. 영어를 쓰는 나는 이렇다.


톤이 올라간다.
이건 여성이 말하는 영어를 주로 듣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영어수업 1n년차 참여한 한국인이라면…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질문이 많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되나, 하는 필터 없이 모조리 물어본다.

감탄사가 많다.

긍정어를 주로 사용한다.


책을 다 읽어가면서 말도 안 되는 바람이 들었다. 한국어를 쓰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영어를 써서 기분을 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러다 하이퍼 리얼리즘을 버리지 못해 백인 사이에 껴있는 동양인 여성으로서는 어떨지도 생각해보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금껏 영어를 왜 놓지 못했는 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영어를 하는 상황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움을 느꼈었다.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영어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괜찮은 상상을 이어가며 불쑥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확신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나 하는 자신감이 든다.




알고 보니 내가 작가님의 뉴스레터 '스피크이지'를 구독하고 있었고 SNS에서 발견한 13주짜리 영어 강의도 작가님의 것이었다.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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