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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Feb 19.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 작품, 좀 거슬릴까?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건 사회가 남긴 '나'라는 편견

넷플릭스와 왓챠를 오가며 갈피를 못잡던 시절이 있었다. 해지했다가 동시에 결제했다가 무료체험을 하는 등 난리 부르스(?)를 치다가 겨우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언젠가 극장, VOD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서 볼 수 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 


그 작품들 중 일부는 사회와 나 자신의 편견이 견고함과 동시에 허술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콘텐츠를 보면서 '굳이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하는 찰나를 극복하면 나와 타인이 조금 더 나은 분위기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을 겪을 수는 없는데(또 단번에 깨닫기도 힘들겠죠) 굳이 요사스러운 입을 열었다가 내 문화적/언어적 기능이 도태되었음을 무차별적으로 때려맞으며 깨닫느니, 콘텐츠를 통해서라도 더 넓고 보편적인 세상을 알고 있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Anne with an E(빨간 머리 앤) 시즌 1 ~ 3


우리가 아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가축을 돌보고 농장 일을 함께할 사내아이를 입양하려던 커스버트 남매가 뜻밖의 실수로 여자아이인 '앤'을 집에 들이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책에서 읽고 만화로 보던 것보다 이 작품 속 '앤'은 훨씬 시끄럽고 예민하고 감정적이다. 어느 정도냐면 '앤'이 매튜와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장면을 보다가 잠시 일시 정지를 눌렀다. 말이 너무 많다. 다시 재생을 눌렀다. 그러다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초록 지붕 집에서 보낸 첫날, '앤'이 창밖을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앤'이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나하나 다정하게 말을 붙이고, 자신만의 세계에 끌어들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자연이나 물건에만 그렇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아니다. 커스버트 남매의 일상, 학교와 마을의 분위기, 처음으로 마주한 외부인에 대한 시선에도 환기를 시켰다. 


처음엔 '앤'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 여전히 '앤'은 쉴 틈 없이 수다 떨고 늘 주변을 부산스럽게 만들며 예민한 데다가 오지랖이 넓다. 그 오지랖이 얼마나 넓은 지 내가 어느새 '앤'처럼 매 순간 웃고 울게 만든다. 


극 중 '앤' 뿐만이 아니다. 실제 '앤'을 연기한 배우 에이미베스 맥널티(Amybeth McNulty)의 마지막 소감이 대미를 장식했다.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B5SxNv7jtPw/?igshid=fdze5xl4jsy1)


One Day at a Time(원데이 앳 어 타임) 시즌 1 ~ 3


1975년 방영한 동명의 시트콤을 기반으로 한 작품. 쿠바 이민자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리디아, 군인 출신으로 현재는 간호사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페넬로페,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십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엘레나 그리고 평범한 사춘기 소년 알렉스가 한 가족을 이룬다. 이들은 미투 운동, 싱글맘의 연애와 결혼, 성년식 등 다채로운 이슈를 요란한 소통을 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 워낙 시끌벅적한 탓에 이들이 상처를 털어놓거나 마음을 열었을 때 그 감동이 배가 된다. 한 회당 30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마음속에 꽉 들어차고 말았다.


넷플릭스는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원데이 앳 어 타임] 제작을 취소했다. 하지만 3월, 미국의 pop tv를 통해 시즌 4가 방영된다. (미국 외 국가에서는 시청이 어렵다고 합니다ㅠㅠ) 팬들의 강력한 바람이 한몫했겠지만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 작품을 만들어낸 제작진과 배우들이 그 힘을 잘 보여주었으니까. 특히, '리디아'를 연기한 리타 모레노(Rita Moreno)를 소개하는 배우 지나 로드리게즈(Gina Rodriguez)의 영상을 보면 그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j6l52aAhVLw&feature=emb_title)




Unbelievable(믿을 수 없는 이야기) 시즌 1


배우 토니 콜렛(Toni Collette)이 나온다. 아무 정보 없이 단 하나의 이유, 토니 콜렛이 나온다기에 보기 시작했다. 너무 처참했다. 작품은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인 '마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마리'는 성폭행 피해를 거짓 신고한 혐의로 기소된다. 그의 곁에는 믿고 털어놓을 어른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쟤는 울지 않는다', '그런 일을 당하고 아르바이트를 나갈 수 있어?', '저렇게 자란 애들은 그럴 수 있어'라고 그가 피해자답지 않음을 비난한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어떤 사건 이후 피해자 여성이 웃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을 만났다고 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사건은 벌어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나누어졌을 때조차 가해자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이춘재, '우발적 범행' 주장

내연녀 최 씨 ‘우발적 살인' 인정

“차비 안 줘?" 아내 30차례 찔러 살해 70대, 심신미약 감경

"내 마음 왜 안 받아줘"... 짝사랑 연상녀 살해


답답한 와중에 각각 다른 지역에서 두 여성 형사가 연쇄 성폭행범을 쫓기 시작한다. 이들은 전지적 피해자 시점에서 사건을 분석하고, 마침내 공조수사에 나선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인 '앰버'가 등장했고, 그가 보인 용기와 연대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작품은 처음부터 한 번에 다 보기 힘들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동안 피해자를 보며 평가하고 다짜고짜 의심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하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셨으면 좋겠다.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더불어 추천하는 드라마

- Grace and Frankie(그레이스 앤 프랭키) 시즌 1 ~ 6, 시즌 7로 종영 예정

- Dear White People(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시즌 1 ~ 3, 새 시즌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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